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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서 흔히 겪는 문제 다루기 (반테 군다라타나)

문제를 다루는 법

반테 군다라타나, 고요함의 첫 수업 — 호흡 알아차림, 10장: 문제를 다루는 법

명상에서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겪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로 찾아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장애물을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은 올바른 태도입니다. 어려움과 장애물은 수행 자체의 일부입니다. 완전히 피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배움의 귀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욕망을 좇아가기 때문에 삶의 진흙탕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명상은 이 패턴을 들여다보고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실험실을 마련해 줍니다. 명상 중에 떠오르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은 탐구하고 함께 다룰 대상입니다. 어떤 즐거움도 어느 정도의 고통을 수반하고, 어떤 고통도 즐거움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삶은 행복과 괴로움이 어우러진 것이며, 둘은 늘 함께합니다. 명상도 예외는 아닙니다. 좋은 시간도, 힘든 시간도 있으며, 황홀한 순간도, 두려움이 스치는 순간도 있습니다.

벽은 어디에 있나? 벽은 마음속에 있다

벽에 부딪힌 듯한 경험에 맞닥뜨렸을 때 놀라지 마십시오.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숙련된 명상가들도 저마다의 벽을 갖고 있습니다. 벽은 반복해서 나타나기 마련이니, 그때를 위해 준비해 두십시오. 어려움에 대처하는 능력은 결국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기회로, 수행을 단단하게 다지는 조건으로 바라보는 법을 익힌다면, 여러분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명상에서 문제를 다루며 쌓는 능력은 평생 여러분과 함께하여, 훗날 찾아오는 진짜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명상 중에 생기는 모든 어려움을 회피하려 든다면, 여러분은 삶을 때때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바로 그 습관을 오히려 강화하는 셈입니다.

불쾌한 상황을 직면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명상가로서 우리의 할 일은 자신에게 인내심을 갖고,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모든 슬픔과 결점을 받아들일 여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불쾌한 것에서 도망치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진정한 선의 전제 조건은 부정적인 것이 일어나면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입니다.

진짜 고통스럽다면,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어려움을 다루는 흔한 전략은 자기 암시입니다. 불쾌한 것이 떠오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거나,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킵니다. 부처님의 접근법은 정반대입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숨기거나 치장하지 말고, 철저히 살피기를 요청하십니다. 불교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감정을 끌어안지도, 진짜 자신의 감정을 피하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고통스럽다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직접 들여다보십시오. 움찔하지 마십시오. 괴로울 때는 그 경험을 자세히 살피십시오.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십시오.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십시오. 덫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것을 연구하는 것, 곧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해하십시오. 덫이 해체되면 더 이상 여러분을 붙잡아둘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자유입니다.

생로병사에 직면하기: 선택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 관점은 불교 철학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피상적인 학자들은 이것을 곧바로 비관주의로 낙인찍으며, 고통만을 강조한다고 비판합니다. 불교 사상가들은 자신을 비관주의자로 보지 않습니다—오히려 정반대라고 여깁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피할 수도 없습니다. 고통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은 비관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실용적인 형태의 낙관주의입니다.

배우자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내일 어머니나 자매,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날 하루에 직장과 저축, 두 다리를 모두 잃어 휠체어 신세가 된다고 상상해 보세요—그런 상황에서도 남은 인생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말기 암 환자라면, 그런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다면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불운들 대부분은 피할 수도 있지만, 모두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순간 친구나 가족을 잃게 됩니다. 누구나 때때로 병에 걸리기도 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짓눌려 괴로워할 수도, 마음을 열고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명확히 하자: 고통과 괴로움은 다르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그렇지 않습니다.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죠. 이런 비극 중 하나가 지금 당신의 마음을 덮친다면,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마음을 지배하는 습관적 패턴들이 당신을 고통 속에 가두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이런 패턴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데 시간을 쏟는 것은 정말 현명한 투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 고통은 줄이고 즐거움은 늘리려고 합니다. 불교가 당신에게 그런 노력을 멈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과 안전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는 게 좋습니다. 누구도 당신에게 모든 재산을 버리거나,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괴로움을 찾아오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불행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을 권합니다—어떤 고통은 아무리 해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당신에게로 돌진해 오는 트럭을 본다면, 당연히 피하려 할 것입니다. 이 논리는 명상 수행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불행을 맞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삶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트럭에 대비하는 유일한 방법이죠.

수행 중에는 여러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죠—몸의 불편함, 감정의 동요, 마음가짐의 문제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각각 다른 대응이 필요하지만, 모두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 1: 신체 통증

통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통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인생에서 가장 보편적인 경험 중 하나이며, 명상 중에도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마주치게 됩니다.

통증에 대처하는 데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통증을 없애보세요.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죠. 그래도 계속된다면, 통증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으세요. 첫 번째 단계는 몸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통증이 두통, 발열, 혹은 다른 질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땐 명상에 앉기 전에 치료를 받으세요.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는 등 평소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어디가 아프신가요?

어떤 통증은 특정 앉은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를 오래 해본 적이 없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하며, 어느 정도 통증은 거의 불가피합니다. 아픈 부위에 따라 적합한 해소법이 있습니다. 다리나 무릎이 아프다면 먼저 바지를 확인하세요. 너무 꽉 끼거나 천이 두꺼우면 원인일 수 있으니, 다른 것으로 갈아입어보세요. 방석도 살펴보세요. 눌러도 약 8센티미터 정도의 두께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허리가 아프다면 벨트를 느슨하게 해보고, 필요하면 바지 허리 밴드도 풀어주세요. 요통은 대개 자세가 흐트러져서 생깁니다. 등을 구부리고 앉으면 편할 리가 없으니, 등을 펴고 앉으세요. 뻣뻣하게가 아니라 척추를 곧게 세우는 것입니다. 목이나 등 상부의 통증은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손의 위치입니다. 손은 허리보다 높이 들지 말고, 무릎 위에 편안히 올려두세요. 팔과 목의 근육은 이완하되, 고개는 앞으로 떨구지 마세요. 척추와 일직선이 되도록 유지하세요.

통증을 관찰하세요

이 모든 조정을 마친 뒤에도 통증이 남아 있다면,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세요. 통증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통증을 향해 달려들지 마세요, 동요하지도 마세요. 그저 마음챙김으로 관찰하세요. 통증이 강해지면 숨에서 주의가 빼앗기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것과 싸우지 마세요. 주의를 부드럽게 있는 그대로의 감각으로 옮기세요. 통증 속으로 깊이 들어가세요. 그 경험을 차단하지 마세요. 그 감각이 실제로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도망치고 싶은 습관적인 충동을 넘어, 그 아래의 있는 그대로의 감각까지 들여다보세요.

두 가지가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감각, 즉 통증 그 자체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감각에 대한 저항입니다. 저항은 부분적으로는 정신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신체적입니다. 신체적 부분에는 통증이 있는 부위와 그 주변 근육의 긴장이 포함됩니다. 그 근육들을 하나씩 이완시켜 완전히 풀어주세요. 이것만으로도 통증이 눈에 띄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저항의 정신적 층을 다룰 수 있습니다. 몸이 긴장되어 있듯이, 마음도 긴장되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그 느낌을 움켜쥐고, 덮어서 의식 밖으로 밀어내려 합니다. 이는 말없는 저항입니다. '이건 싫다' 혹은 '사라져라'는 태도이죠.

몸을 이완하고, 마음을 이완하라

두 번째 층은 더욱 미묘합니다. 어떤 말로도 그것을 완벽하게 묘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을 터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유를 통하는 것입니다. 긴장된 근육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살펴보고, 같은 방식으로 마음의 영역에 적용해 보십시오. 몸을 이완하듯, 마음을 이완하십시오. 불교는 몸과 마음을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며, 너무나 밀접하여 많은 사람은 이 두 단계가 분리된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몸을 이완하는 것은 곧 마음을 이완하는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마음과 몸 모두에 걸친 이완 전체를 하나의 과정으로 체험합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저항의 장벽을 지나 의식이 천천히 순수한 의식의 근저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저항은 스스로 만든 장벽입니다. 그것은 도랑이며, 자아와 타자 사이의 거리감—'나'와 '고통' 사이의 경계입니다. 그 장벽이 녹아 사라지면, 분리도 함께 사라집니다. 당신은 출렁이는 감각의 바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고통과 하나가 됩니다. 당신은 고통 그 자체가 됩니다. 고통이 옅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십시오—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괴로움은 사라졌습니다. 감각만이 남을 뿐, 날것 그대로의 경험입니다. 상처받고 있던 '나'는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고통을 넘어서기

이것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고통에 대해서만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하십시오. 압도적인 고통은 아직 다루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기술이 그렇듯이, 연습을 통해 실력이 늘어납니다. 더 많이 앉을수록, 더 능숙해집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자면, 이것은 마조히즘이 아닙니다. 자기 고문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은 각성을 위한 수행이지, 자기 학대가 아닙니다. 고통이 정말로 참을 수 없게 된다면, 명상을 계속하되 자세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꾸십시오. 움직임을 관찰하고, 변화의 감각을 느껴보십시오. 고통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차리고, 고통이 풀려나가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그러나 너무 많이 움직이지는 마십시오. 움직임이 적을수록 알아차림을 유지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초보자들은 때때로 고통이 일어날 때 알아차림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어려움은 오해에서 비롯됩니다—그들은 알아차림이 고통과 분리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떤 대상이든 필요로 합니다. 고통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호흡에 알아차림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고통에도 알아차림을 가질 수 있습니다.

4장에서 살펴보았던 원리들은 고통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의하십시오: 지나친 주의는 너무 적은 주의만큼이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덧붙이지도 말고, 빼먹지도 마십시오. 개념이나 인상, 가정으로 순수한 경험을 흐리지 마십시오. 고통이 펼쳐지는 그대로 머물면서, 그것의 발생과 지나감을 놓치지 마십시오. 맑은 알아차림으로 살펴보지 못한 고통은 정서적 반응—공포, 불안, 분노—을 일으킵니다. 올바르게 본다면, 그런 반응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감각일 뿐이며,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일 뿐입니다. 일단 신체적 고통에 대한 이 기술을 익히면, 그것은 당신의 남은 인생 동안 활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어떤 불편한 감정에도 그것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고통에 효과가 있는 것은 불안과 만성적인 우울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핵심에 있는 기술—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유용하고 실용적인 기술—은 인내입니다.

문제 둘: 다리의 저림

초보자에게는 좌선 중에 다리가 저리거나 감각이 사라지는 일이 매우 흔합니다. 아직 가부좌 자세에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크게 불안해져서 일어나 걸어야 한다고 느끼고, 또 어떤 이들은 혈액순환이 나빠 다리가 망가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림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혈액순환이 나빠서가 아니라 신경이 눌려 생기는 현상입니다. 앉아만 있다고 다리가 손상되지는 않으니, 마음을 놓으십시오. 명상 중에 다리가 저리면, 그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십시오.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십시오. 불편할 수는 있지만, 너무 긴장하지 않는 한 통증은 아닙니다. 그저 차분히 지켜보십시오. 좌선 내내 다리가 저린 채로 있어도 괜찮습니다. 한참 수련하고 나면, 저림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몸은 매일의 수련에 적응해 가고, 결국에는 얼마나 오래 앉아 있든 다리가 더 이상 저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문제 셋: 묘한 감각들

명상 중에 사람들은 온갖 현상을 경험합니다. 어떤 이는 가려움을, 어떤 이는 저림, 깊은 이완, 가벼움, 혹은 둥둥 떠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신이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초보자들은 흔히 이러한 경험에 흥분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실제로 날아가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완 상태에 이르면 신경계가 그저 감각 신호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차단되어 있던 많은 감각 정보가 이제 자유롭게 흐를 수 있게 되면서, 온갖 묘한 느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는 전혀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감각일 뿐이니, 평소의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지나가는 것도 지켜보십시오. 거기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문제 넷: 졸음

명상 중에 졸리는 것은 완전히 정상입니다. 아주 고요하고 이완된 상태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마땅한 상태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보통 잠들 때만 이 쾌적한 상태를 경험하기 때문에, 그 과정과 연관 짓습니다. 자연히 점점 잠들어갑니다. 자신이 조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알아차림을 호흡에서 졸음 자체로 옮기십시오. 졸음에는 사고에 영향을 주는 특정한 성질이 있습니다. 그 성질들을 알아내고, 몸에서 일어나는 그에 상응하는 감각을 살피십시오. 이 호기심 어린 알아차림은 졸음의 자연스러운 적이며, 졸음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없으면, 왜 몸이 졸린지 살펴보고 원인을 찾아 해결하십시오. 방금 큰 식사를 했다면, 그 때문일 수 있습니다. 좌선 전에 너무 많이 먹지 않거나, 든든히 먹은 뒤 한 시간쯤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한 당연한 사실도 잊지 마십시오. 하루 종일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면 당연히 피곤할 것이고, 전날 밤 몇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좌선 전에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잠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깨어 있고 알아차리십시오. 잠과 수행의 깊은 집중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통찰은 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명상에서만 옵니다. 매우 졸리다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가능한 한 오래 멈추어 주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내쉬십시오. 다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가능한 한 오래 참았다가 천천히 내쉬십시오. 몸이 따뜻해진 느낌이 들고 졸음이 사라질 때까지 이를 반복한 다음,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십시오.

문제 다섯: 집중할 수 없음

안절부절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지는 마음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산만함 다루기'라는 두 장에서 다루겠습니다. 하지만 이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들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은 일과를 조금 조정하는 것만으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정신적 이미지는 강력하며,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의 모든 기법은 이 소재에 직접 작용합니다. 좋은 작품은 그 말과 이미지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방금 수상작 영화를 봤다면 명상 중에 그 장면들이 가득할 것이고, 스릴러를 읽고 있다면 명상 중에 괴물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서를 바꾸십시오. 먼저 명상하고, 그런 다음에 읽거나 영화를 보십시오.

또 다른 강력한 요인은 바로 당신의 감정 상태입니다. 삶에 갈등이 있다면,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좌선까지 따라옵니다. 앉기 전에 가능한 한 정리해 두면 잡념이 줄어 수행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명상을 건너뛸 핑계로 삼지는 마십시오. 때로는 앉기 전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내려놓고 앉으십시오. 당신을 가두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편협한 관점입니다. 명상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놓아두면, 나중에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가끔은 명확한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순환 과정을 기억해 보십시오—명상은 그 순환 속 한 고리일 뿐입니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는 법입니다.

관찰 명상은 주로 알아차림을 깨우는 수행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알아차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소란스러워 가라앉지 않는다면, 그저 관찰하십시오. 그 모든 것이 당신이기에, 그렇게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발견의 여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끊임없는 잡담에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 잡담 역시 알아차림이 주의를 기울일 또 다른 대상일 뿐입니다.

여섯 번째 문제: 권태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콧구멍으로 공기가 드나드는 느낌만 느끼는 것보다 더 권태로운 일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명상에서는 이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합니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권태도 하나의 마음 상태입니다. 그렇게 다루어 보십시오. 권태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간단한 전략이 있습니다:

전략 1: 진정한 알아차림을 다시 세우기

만약 숨을 반복해서 관찰하는 것이 지루한 작업처럼 느껴진다면,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더 이상 진정한 알아차림으로 그것을 관찰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결코 권태롭지 않습니다. 권태를 느낀다면 다시 살펴보십시오. 숨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마십시오. 관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 과정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축소하여 살아 있는 실재를 놓치게 됩니다. 숨을 포함한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또렷한 알아차림을 유지할 때,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차림은 아이의 눈과 호기심으로 모든 것을 관찰합니다. 각 순간을 마치 처음이자 유일한 순간인 것처럼 바라봅니다. 그러니 다시 살펴보십시오.

전략 2: 자신의 마음 상태 관찰하기

권태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무엇입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느낌입니까?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신체적 감각이 동반되나요? 생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권태를 마치 그 상태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처럼 살펴보십시오.

일곱 번째 문제: 두려움

명상 중에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두려운 상태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는 흔한 일이며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억압했던 것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생각은 무의식에서 거품처럼 떠오릅니다. 생각에 실린 감정이 생각 그 자체보다 먼저 알아차림에 들어옵니다. 두려움을 견디면, 그 기억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잡담하듯 들려올 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직접 마주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수행의 어느 시점에 실재가 당신에게 강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당신은 삶을 스스로 설명하기 위해 늘 의지해왔던 환상의 벽들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궁극의 실재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두렵지만, 결국 마주해야 합니다. 한 걸음 내딛고 깊이 들어가십시오.

세 번째 가능성은,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스스로 만든 것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서툰 명상 기법 때문일 수도 있죠. 무의식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확인하려는" 프로그램을 실행해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두려운 환상이 떠오르면 집중력이 그 환상에 사로잡히고, 환상은 그 집중이 쏟는 에너지를 먹고 점점 커집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만약 마음챙김이 충분히 강했다면, 그 변화가 시작되자마자 알아차리고 평정심(equanimity)으로 그 상황을 다루었을 것입니다. 무슨 원인이든 간에, 마음챙김이 답입니다.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저 두려움이 일어나고 커지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그 효과를 살펴보십시오. 두려움이 당신을 어떤 기분으로 만들고,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해 보십시오. 만약 자신이 두려운 환상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면, 그저 마음챙김으로 그 모든 환상을 관찰하십시오.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저 이미지일 뿐이고, 떠오르는 기억은 그저 기억일 뿐이라고 여기십시오. 감정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그 반응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임을 알아차리십시오. 그 과정에 끌려 들어가지 마십시오. 모든 변화를 호기심 많은 구경꾼처럼 바라보십시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억지로 통제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이나 감정, 환상을 억누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저 한발 물러서서, 그 소란스러운 상태가 스스로 끓어올렸다가 가라앉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저 오래된 기억일 뿐, 환상일 뿐이니까요. 그것은 실체가 없습니다—그저 두려움이라는 감정일 뿐입니다.

만약 두려움이 의식의 무대에서 자기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무의식 깊숙이 가라앉아 나중에 다시 돌아와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여덟 번째 문제: 불안(Unease)

초조함은 종종 명상 경험이 쌓인 수행자들의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가면과 같습니다. 우리는 불쾌한 경험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억누르는 데 더 익숙합니다. 다루지 않아도 되도록 그 경험들을 깊숙이 묻어두려 하죠.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묻지 못하거나, 아예 완전히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생각은 숨어 있지만, 그것들을 덮는 데 쓴 정신적 에너지는 남아 몰래 분출되며, 우리가 '불안' 또는 '초조함'이라고 부르는 불편함을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깊숙이 묻어도 완전히 가려지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여전히 편안하지 못하고 이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불편한 상태가 명상 중에 나타나면, 그저 관찰만 하십시오. 그 상태가 당신을 지배하게 두지 마십시오. 일어나서 자리를 뜨려 하지 마십시오. 그 상태와 싸우거나 사라지게 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 상태가 그대로 있게 두고 자세히 관찰하십시오. 그러면 결국 억눌렸던 내용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고, 당신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도망치려는 불쾌한 경험은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습니다: 죄책감, 탐욕, 혹은 다른 어떤 문제일 수도 있고, 분명한 통증, 숨겨진 질환, 혹은 질병의 전조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두고 주의 깊게 관찰하십시오. 그저 앉아서 당신의 초조함을 관찰하기만 하면, 결국 그 상태는 저절로 떠나갈 것입니다. 초조함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당신의 명상 수행에서 작은 돌파구가 됩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당신은 초조함이 단순히 마음의 표면적인 상태가 아니라, 본래 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왔다가 사라질 뿐, 당신을 통제할 힘은 전혀 없습니다.

아홉 번째 문제: 지나친 노력(Over-Efforting)

숙련된 명상 수행자들은 대부분 매우 기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인류가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 중 하나인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그들의 유머는 토크쇼 진행자들의 얕은 재담과 다릅니다. 진정한 유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실패도 웃어넘길 수 있고, 자신에게 닥친 불운도 가볍게 장난칠 수 있습니다.

초심자들은 종종 명상 수행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명상 중에는 가볍게 머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상할 때는 가능한 한 많이 이완하십시오.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긴장하고 모든 것과 싸우며, 모든 것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입니다.

초보자들은 종종 빨리 결과를 내고 싶어 합니다.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 채로, 무작정 뛰어들어 즉시 놀라운 성과를 기대하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긴장이 쌓이고 지치기 일쑤고, 모든 게 극도로 엄격하고 진지해지기만 합니다. 이런 긴장은 마음챙김을 방해할 뿐이에요. 성과가 자연히 적어지면, 명상이 지루하고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고 단정 짓고는 금방 포기해버리죠. 명상은 실제로 명상해 보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명상이 어떤 것인지,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어요. 초보자들은 종종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이는 그들이 수행이 정확히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저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질 뿐이죠.

초보자들의 기대는 물론 비현실적이고 무지에서 비롯된 거죠. 그들이 바라는 바는 애초에 빗나간 것이고, 그런 기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에요. 무리하게 노력하면 경직과 고통만이 따라올 뿐이고, 죄책감과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죠. 너무 많은 긴장으로 수행하면 노력이 뻣뻣해져 버려 마음챙김은 싹트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가장 좋은 조언은 모든 걸 내려놓는 거예요—기대도, 긴장도 내려놓고—그저 안정되고 균형 잡힌 노력으로 명상하는 거죠. 수행을 즐기세요. 고된 일이나 짐으로 만들지 마시고요. 그저 마음챙김을 유지하면, 명상이 나머지는 알아서 이끌어줄 거예요.

열 번째 문제: 좌절

무리한 노력의 결과는 좌절이에요. 긴장만 잔뜩 하고도 아무 성과도 없이 시간만 흐르죠. 기대했던 만큼의 진전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실패자나 된 것처럼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순환을 거치지만, 완전히 피할 수도 있답니다. 비현실적인 기대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좌절감은 어디서나 나타나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좋은 조언을 들어도, 여전히 자신에게 찾아오는 걸 경험하게 될 거예요. 해결책이 있어요.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그저 자신의 마음 상태를 명확히 살펴보세요. 거기에 감정을 더하지 마세요. 그저 지켜보기만 하세요. 실패감이 드는 마음은 그저 또 하나의 무상한 감정의 반응일 뿐이에요. 그것에 휘둘리면, 당신의 기력을 갉아먹고 점점 커져 버릴 거예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하면, 자연히 사라져 버릴 거예요.

명상 중에 실패감과 좌절을 알아차렸다면, 오히려 다루기 훨씬 쉬워요. 마음챙김을 유지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 순간, 그저 실패감 자체에 마음챙김을 두세요. 이 간단한 한 단계만으로도 마음챙김을 다시 세울 수 있어요. 실패감이 드는 마음은 결국 기억일 뿐이에요.

명상에는 실패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오직 좌절과 어려움만 있을 뿐이죠.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는 없어요. 설령 스무 해 동안 아무런 성과도 없이 보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이든 마음챙김을 유지하기로 선택할 수 있어요. 그건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에요. 후회는 그저 마음챙김을 잃게 하고 또 다른 문을 열 뿐이에요. 마음챙김을 잃었다는 걸 깨닫는 바로 그 순간, 그 깨달음 자체가 곧 마음챙김의 행위인 거죠. 그러니 수행을 계속하세요. 감정적 반응에 휘둘려 방향을 잃지 마시고요.

열한 번째 문제: 명상에 대한 저항

가끔은 그냥 명상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고, 명상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는 때가 있습니다. 한 번 빠지는 게 큰 문제는 아니지만, 금방 습관이 되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저항감을 뚫고라도 명상을 계속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 저항감을 관찰하세요. 대부분의 경우 그 저항감은 매우 짧아서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곤 해, 앉은 지 5분이 지나면 사라지죠. 때로는 그날 기분이 가라앉아 생기는 저항감이라 조금 더 오래 가기도 하지만,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에요. 20~30분 명상 중에 그 저항감을 해소하는 게, 저항감을 안고 하루 종일을 망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또 수행 자체에서 어려움이 생겨 저항감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 원인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원인을 알고 있다면 이 책에서 소개한 기법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세요. 문제가 해결되면 저항감도 함께 사라집니다. 원인을 모른다면 그저 버텨야 합니다. 저항감이 사라질 때까지 그저 앉아 명상을 계속하고, 그 저항감을 주의 깊게 관찰하세요. 분명 사라집니다. 그러면 깨어있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원인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때 비로소 그 문제를 다루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당신의 태도다

명상에 자주 저항감이 든다면 기본적인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보세요. 아주 미묘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명상은 지루한 의식도, 고통스럽거나 따분한 잡일도, 엄숙한 의무도 아닙니다. 명상은 마음챙김이고, 존재의 새로운 방식이며, 놀이의 한 형태입니다. 명상은 당신의 친구예요. 그렇게 여기면 저항감은 여름 산들바람에 날아가는 가벼운 연기처럼 사라질 거예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해봐도 저항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더 심각한 걸 수도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장애물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초보자들은 이런 경우를 거의 겪지 않지만, 발생할 수는 있죠. 포기하지 마세요. 도움을 요청하세요. 자격을 갖춘 관찰 명상 스승을 찾아 이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고 하세요. 그것이 바로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이니까요.

문제 12: 최면 상태 또는 혼침

우리는 이미 졸림의 심리적 현상에 대해 다룬 바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마음의 혼침은 깊은 명상 삼매의 해로운 부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완이 깊어지면서 근육만 풀리는 게 아니라 신경 전달에도 변화가 생기죠. 그래서 몸에 매우 평화롭고 가벼운 감각이 생깁니다. 마치 몸과 분리된 것처럼 깊은 평화를 느끼게 되는 거죠. 아주 편안한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집중이 성실히 호흡에 머물러 있지만, 명상이 계속되면서 그 편안한 감각이 주도권을 빼앗아 호흡에서부터 당신의 주의를 멀어지게 합니다. 당신은 그 상태를 정말로 즐기게 되고, 마음챙김은 점점 흐려집니다. 당신의 주의는 흐릿한 희열의 안개 속을 목적 없이 떠다니게 되죠. 결국 마음챙김은 온데간데없이, 최면에 빠진 듯한 희열 상태에 빠지게 되는 거죠. 해결책은 물론 마음챙김입니다. 그 현상들을 마음챙김으로 관찰하면 사라지게 되죠. 희열이 생겨도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피할 필요는 없지만, 절대 그것에 도취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그저 신체 감각일 뿐이니, 그렇게 대하세요. 감각은 감각일 뿐, 혼침은 혼침일 뿐이라고 관찰하세요. 그것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세요. 그 안에 휩쓸리지 마세요.

명상 중에는 문제가 피할 수 없이 생기기 마련입니다—누구나 겪는 일이죠. 그 문제를 끔찍한 고통으로 여길 수도,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여길 수도 있죠. 그것을 짐으로 여기면 당신의 고통만 더 커질 뿐이에요. 하지만 배우고 성장할 기회로 여기면 당신 마음의 지평은 무한히 넓어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