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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중안 교수: 아함(阿含) 속의 보살도 — 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의 출현에 대한 논의를 겸하여

불교학 논선

불교학 논선

아함 속의 보살도

— 반야바라밀다경의 출현에 대한 논의를 겸하여

린중안 (2004)

I. 서언

II. 아함 속 보살의 전오바라밀(前五波羅蜜)

III. 아함 속 보살의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IV. 반야바라밀다경의 출현

V. 결론: 인도 초기 및 후기 보살도의 전개

I. 서언

아함(阿含)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주로 성문도(聲聞道)를 중심으로 하면서, 보살도(菩薩道)도 함께 아우르고 있다. 부처님이 "과거에 이와 같이 수행하였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그것은 곧 보살도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신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아함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그 내용은 육바라밀(六波羅蜜), 곧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의 여섯 가지로만 이루어진다. 아래에서는 아함의 문헌을 바탕으로, 부처님이 전생(前生)에 걸쳐 어떻게 복덕(福德)과 지혜(智慧)를 쌓으셨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본 글은 전오바라밀이 주로 자연스러운 자비의 품성, 곧 불종(佛種)을 기르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보살도 초기 단계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수행이다. 반면 보살도의 후기 단계는 "공(空)에 오래 머무름"으로써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증득"하는 데에 중심을 두며, 이때에는 반야바라밀이 주된 수행이 되어 범천(梵天)의 제법(諸法)을 초월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후기의 필요에 의해, 부처님의 반열반(般涅槃) 후 오백 년이 경과한 무렵 인도에서 다수의 반야바라밀다경이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II. 아함 속의 전오바라밀

아함 전반에 걸쳐, 부처님은 자신의 전생을 방편으로 설하셨다. 한편으로는 인과응보의 필연성을 보여 주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살도의 고귀함과 어려움을 암시하신다. 아래에서는 경전의 구절을 인용하여, 부처님이 전생에서 어떻게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이라는 전오바라밀을 직접 실천하셨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무수한 생(生)에 걸쳐 복덕을 쌓음으로써 대비(大悲)의 종자를 뿌리시고, 보살의 종성(種性)을 갖춘 분이 되신 것이다.

(1) 재가 장자(長者)와 스승으로서의 복덕 축적

【사례 1】 부처님은 전생에 "수란(遂藍, Sūraṃgava)"이라는 대장자(大長者)로서, 재가자(在家者)의 신분으로 널리 보시를 행하여 대비(大悲)를 기르고 복덕을 쌓으셨다.

근거: 『중아함경(中阿含經)·수달다경(須達多經)』(제155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먼 옛날, 수란이라는 바라문 장자가 있었으니, 그의 재물은 한량이 없었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보배와 광대한 전지(田地)·봉읍(封邑),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가축과 재산을 소유하였다. 그의 보시는 이러한 규모였으니, 팔만 사천의 금그릇에 은가루를 가득 담아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고, 팔만 사천의 은그릇에 금가루를 가득 담아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고, 팔만 사천의 금그릇에 금가루를 가득 담아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으며, 팔만 사천의 은그릇에 은가루를 가득 담아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다. 팔만 사천 마리의 코끼리를 장엄하게 꾸미고 흰 그물로 입혀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고, 팔만 사천 필의 말을 장엄하게 꾸미고 흰 그물과 금재갈을 씌워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으며, 팔만 사천 마리의 소를 천과 밧줄로 두르되 매 마리마다 한 말의 젖을 내게 하여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고, 팔만 사천의 여인으로 보는 이가 기뻐할 만큼 아름답고 보배 장신구로 가득 꾸며 이와 같이 크게 베풀었으니, 그 밖의 음식과 음료, 기타 물품들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대는 그때의 바라문 장자 수란이 다른 사람이었다고 여기느냐? 그리 여기지 말라. 왜냐하면, 이는 곧 나 자신이었음을 알라. (T1, p678a)

【사례 2】 부처님은 전생에 "아라나(Āraṇa)"라는 대장자로서, 수많은 제자들의 영적 스승이 되어 그들에게 범천(梵天)의 법을 가르치셨다. 그의 제자 가운데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한 이들은 임종 후 범천에 태어났다. 아라나 자신은 한층 더 높은 자비심을 닦아, 임종 후 광음천(光音天, Ābhāsvara heaven)에 태어났다. 이 생(生)에서 부처님은 전오바라밀, 특히 사선(四禪)의 수행을 통해 복덕을 쌓으셨다.

근거: 『중아함경·아라나경(Āraṇa Sūtra)』(제160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쿠라빠(Kulāpa) 왕께는 아라나(Āraṇa) 대장로라 불리는 브라흐만이 있었으니, 그는 부모의 보살핌 아래 자라 7대에 걸쳐 순수하고 끊어지지 않은 가문을 가졌으며, 이생과 전생에 걸쳐 바른 행실을 지켰고, 널리 배워 배운 바를 모두 기억할 만큼 총명하였으며, 네 가지 경전에 능통하고 인(因)·연(緣)·주(主)·부(附)·비(譬)의 다섯 가지 요목에 깊이 통달하였노라. 비구들이여, 이 브라흐만 아라나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십만 명의 마나바카(mānavaka) 제자들이 있었노라. 그는 한적한 곳에 머물러 이 수많은 마나바카 제자들에게 경전을 가르쳤노라….

그 후 어느 날, 브라흐만 아라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kāṣāya) 법의를 입은 뒤, 믿음으로 가정을 떠나 무가의 삶을 살며 수행에 들었노라. 각지에서 온 수많은 마나바카 제자들도 역시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은 뒤, 믿음으로 가정을 떠나 무가의 삶을 살며, 존경하는 스승 브라흐만 아라나를 따라 수행에 들었노라. 이처럼 하여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와 그의 제자들의 공동체가 생겨났노라. 그 때,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노라.

"마나바카들이여, 참으로 기이하도다! 인간의 일생은 지극히 짧으니, 우리 모두는 필경 다음 세상으로 가야 하느니라. 덕을 닦고 성스러운 삶을 살라, 모든 태어난 것은 필경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법도, 의로운 행위도, 선한 행위도, 숭고한 행위도 행하지 아니하고, 방종하여 더 높은 목표를 두지 않느니라."

나아가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노라.

"마나바카들이여, 나는 이 세상에서 탐욕과 갈망을 버렸으니, 내 마음은 다툼에서 벗어나 있느니라. 남의 재물과 재원을 볼 때 스스로 탐욕이나 탐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이러한 번뇌로부터 마음을 정화하였노라. 나는 또한 분노와 원한, 혼침과 후회를 버렸으며, 이 세상에서 의혹과 어리석음을 끊었고, 선한 법에 대하여 흔들림이 없어 의심에서 마음을 정화하였노라. 마나바카들이여, 너희 또한 이 세상에서 탐욕과 갈망을 버리고, 마음을 다툼에서 벗어나게 하며, 남의 재물과 재원을 볼 때 탐욕이나 탐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이러한 번뇌에서 너희의 마음을 정화하라. 또한 분노와 원한, 혼침과 후회를 버리고, 이 세상에서 의혹과 어리석음을 끊으며, 선한 법에 대하여 흔들림이 없도록 하라….

자비(慈)의 마음이 충만하여, 속박되지 아니하고, 원한에서 벗어나, 분노와 다툼이 없으며,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하고, 잘 닦여져서 온 세상에 두루 미치도록—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느니라. 슬픔을 아끼는 자비(悲)의 마음, 타인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희사(喜)의 마음, 평등하게 머무는 사(捨)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속박되지 아니하고, 원한에서 벗어나, 분노와 다툼이 없으며,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하고, 잘 닦여져서 온 세상에 두루 미치도록—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느니라."

이렇게 하여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가 제자들을 가르쳤노라. 나아가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는 제자들에게 범천(梵天) 세계의 법들을 가르쳤노라.

(a)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가 이러한 법들을 가르칠 때, 그 가르침을 온전히 받들어 수행하지 못한 제자들은 임종할 때 사천왕천(四天王天), 도리천(忉利天), 야마천(夜摩天), 도솔천(兜率天), 니르마나라티(Nirmāṇarati) 천, 파리니르미타바샤바르틴(Paranirmitavaśavartin) 천 중 어느 한 곳에 태어났노라. (b) 그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들어 수행하여 사범주(四梵住)를 닦고 감각적 욕망을 버린 제자들은 임종할 때 범천(梵天) 천에 태어났노라….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는 그 후 더 높은 자비를 닦았고, 그리하여 임종할 때 아바스바라(Ābhāsvara) 천에 태어났노라. 그와 그의 제자들은 헛되이 수행하지 아니하고, 큰 과실을 거두었노라.

비구들이여, 그 때의 존경하는 스승 아라나가 다른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느냐?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나였음을 알라. (T1, p684a)

【예 3】 또 다른 전생에 부처님은 선안(善眼)이라는 대스승이셨다. 신통의 근지를 얻어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천계(梵天界)의 법을 가르치셨다.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한 제자들은 수명을 마친 뒤 범천에 태어났고, 선안 스승은 나아가 더욱 높은 자비를 닦아 수명을 마친 뒤 아바사바천(光音天)에 태어나셨다. 이 생에서도 부처님은 앞의 다섯 바라밀, 특히 사선(四禪)을 닦아 무량자비심을 이루시며 공덕을 쌓으셨다.

증거: 중아함경 • 칠일경(七日經) (제8권)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비구들이여! 옛날에 선안이라는 대스승이 있었으니, 외도 수행자들의 스승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신통의 근지를 얻었다. 선안 스승은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그들에게 범천계의 법을 가르쳤다. (a) 그가 이 법을 가르칠 때,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지 않은 제자들은 수명을 마친 뒤 사천왕천, 삼십삼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또는 타화자재천에 태어났고, (b)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한 제자들은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사범처(四梵處)를 닦아 수명을 마친 뒤 범천에 태어났다…. 훗날 선안 스승은 더욱 높은 자비를 닦아, 그로 인해 수명을 마친 뒤 아바사바천에 태어났다. 그와 제자들의 수행은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욕망을 버리고 신통의 근지를 얻은, 외도 수행자들의 스승으로 추앙받던 그 선안 스승이 다른 사람이었겠느냐? 그리 여기지 말라! 그가 바로 나 자신임을 알라. (T1, p429b)

【예 4】 또 다른 전생에 부처님은 전존(典尊)이라는 재상이셨다. 일곱 나라를 능히 다스린 뒤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아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삼의(三衣)를 입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셨다. 일곱 왕, 일곱 대장자, 칠백 명의 바라문, 사십 명의 왕비가 이처럼 차례로 모두 팔만 사천 명이 동시에 출가하여 전존을 따랐다. 이렇듯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널리 법을 펴고 많은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이 생에서도 부처님은 앞의 다섯 바라밀, 특히 사선을 닦아 무량자비심을 이루시며 공덕을 쌓으셨다.

증거: 장아함경 • 전존경(典尊經) (제3권)에서 범왕이 신중(神衆)에게 말씀하시되,

전존(典尊)은 일곱 왕국의 국정을 다스리며 모든 일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당시 그 나라에는 일곱 대거사(大居士)가 있었는데, 전존은 그들의 가사(家事)까지도 돌보았으며, 칠백 명의 바라문에게는 경전(經典)을 암송하도록 가르쳤다. 일곱 왕은 전존을 신(神)으로 받들었고, 일곱 거사는 그를 대왕(大王)으로 여겼으며, 칠백 바라문은 그를 범천(梵天)으로 존경하였다…… 그때 전존은 성(城) 동쪽에 한적한 선실(禪室)을 짓고, 여름 사월(四月) 동안 그곳에 머물며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았다…… 이윽고 전존이 일곱 왕에게 돌아와 말하였다. "대왕들이시여! 부디 국정을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제 출가하여 재가(在家)의 삶을 버리고, 법의(法衣)를 입고 도를 닦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범왕자(梵王子)에게서 몸의 불순(不淨)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마음이 몸을 크게 꺼려하여 돌아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재가자로 머무는 한, 이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칠 일이 지나 전존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삼의(三衣)를 입고 집을 떠났다. 그때 일곱 왕, 일곱 대거사, 칠백 바라문, 그리고 사십 명의 후궁(後宮)들이 차례로, 이같이 팔만 사천 명이 함께 출가하여 전존을 따랐다. 전존과 이 큰 대중은 여러 왕국을 두루 다니며 법을 널리 전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였다. 그때 범천왕(梵天王)이 천인(天人)들에게 말하였다. "그때의 전존 대신(大臣)이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렇게 여기지 말라. 지금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바로 그 사람이다." (T1, p33c)

(2) 전륜성왕으로서의 공덕 쌓기

【사례 1】 공덕을 효과적으로 쌓기 위해 보살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여러 생(生)에 걸쳐 청정범행(淸淨梵行)을 닦아야 한다. 전륜성왕으로 태어나려면 먼저 세 가지 공덕의 기초, 곧 세 가지 선근(善根)을 쌓아야 한다. (a) 보시(布施, dāna), (b) 지계(持戒, śīla, 곧 마음의 조복), (c) 선정(禪定, dhyāna, 곧 도의 수행, 곧 마음의 수호)이 그것이다.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가지 복업사(福業事)는 무엇인가? 첫째는 보시로 말미암은 공덕의 기초이고, 둘째는 계(戒)로 말미암은 공덕의 기초이며, 셋째는 수(修)로 말미암은 공덕의 기초이다…… 보시란 보시자가 사문(沙門)·바라문·가난한 자·궁핍한 자·유행자(遊行者)들에게 음식·음료·약물·의복·화환·향분(香粉)과 향(香)·주거지·침구·등불 등의 물품을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보시의 부류라 한다…… 계란 살생(殺生)·주지(取不與取)·사음(邪淫)·망어(妄語)를 삼가고, 수라(穌羅, surā)·마이레야(迷隷耶, maireya)·마두(蜜, madhu) 등 취하게 하는 음료(飮料)를 마시지 않으며, 나아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방일(放逸)의 기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를 계의 부류라 한다…… 수란 사무량심(四無量心), 곧 자(慈)·비(悲)·희(喜)·사(捨)를 말한다. 이를 수의 부류라 한다. (T26, p385c)

증거 1: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때 부처님은 아난(阿難)에게 이르셨다. "그때 수달산(修陀禪) 대왕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이전 생(生)에 어떤 공덕을 쌓았기에, 또 어떤 선근(善根)을 심었기에, 지금 이와 같은 뛰어난 과보를 얻게 되었는가?' 다시 생각하니, '이 과보는 세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 보시, 둘째 계(戒), 셋째 선정(禪定)이다. 이 원인들로 말미암아 지금 내가 이 큰 과보를 얻은 것이다.'" (T1, p23c)

증거 2: 『잡아함경(雜阿含經)』(제264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떤 업과(業果)가 이와 같이 위엄 있고 자재한 힘을 낳는 것인가? 곧 세 가지 업의 과보이다. 세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첫째 보시, 둘째 조복(調伏), 셋째 도의 수행이다. (T2, p68a)

증거 3: 『중아함경(中阿含經) • 우분비유경(牛糞譬喻經)』(제61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나(상카팔라 왕, 최고 가문 출신의 크샤트리아 왕)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세 가지 업의 과보를 통해, 내가 오늘날 큰 신통력, 큰 위엄, 큰 복덕, 큰 천력을 지니게 되었으니, 첫째는 다나(布施)요, 둘째는 수행(調御)이며, 셋째는 보호(守護)이다. (T1, p496c)

【예문 2】 과거 생에서 부처님은 대범왕(大梵王)으로 환생하시고, 36번 제석천(帝釋天王)이 되셨으며, 수십만 번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사대주를 다스리셨다. 전륜왕이 되실 때마다 부처님은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시고, 적극적으로 전오도(前五度)를 실천하여 공덕을 쌓으셨다.

증거: 《잡아함경(雜阿含經)》 제264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난 생들을 돌이켜보노라. 오랜 세월 동안 공덕을 닦아, 갖가지 가장 높고 묘하며 즐거운 과보의 열매를 얻었노라. 한때 7년 동안 자비(慈)의 마음을 길렀는데, 세간의 성쇠가 7번 반복되는 동안 이 세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세간이 멸할 때 나는 광음천(光音天)에 다시 태어났고, 세간이 재성될 때 나는 내려와 범천(梵天)의 빈 궁전에서 태어나 비길 데 없는 대범왕(大梵王)이 되어 천 세계를 주재하였다. 그 후 나는 36번 신들의 왕인 삭가(帝釋天王)가 되었고, 수십만 번 전륜왕이 되어 사대주를 다스리며 정법으로 통치하였다. 내가 가진 칠보(七寶)는 다음과 같으니, 전륜보(輪寶), 상보(象寶), 마보(馬寶), 주보(珠寶), 여보(女寶), 주재보(주재寶), 병사장보(兵將寶)이다. 나는 천 명의 아들 두었으니, 모두 용맹하고 건장하였노라. 사대해 안 땅은 평탄하고 가시나 덤불이 없었노라. 나는 강제나 폭력에 의하지 않고 오직 법만으로 [온 중생을] 복종시켰다." (T2, p67c)

증거: 《중아함경(中阿含經)》 「복덕경(福徳經)」 제138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덕을 두려워하지 말라. 복덕은 기쁨의 근원이며,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이니라. 어찌 그런가? 복덕을 기쁨이라 하는 까닭이다. 복덕을 두려워하는 것은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니, 어찌 그런가? 무복덕(無福徳)을 고통이라 하는 까닭이다. 이를 알라. 나는 지난 세상에 오랜 세월 동안 공덕을 닦았고, 오랜 세월 동안 그 과보를 거두었으며, 마음이 좋아하는 바를 즐겼노라. 한때 나는 7년 동안 자비(慈)를 닦았는데, 세간의 성쇠가 7번 반복되는 동안 이 세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세간이 멸할 때 나는 광음천(光音天)에 다시 태어났고, 세간이 재성될 때 나는 내려와 빈 범궁(梵宮)에서 태어나 그곳의 대범천왕(大梵天王)이 되었노라. 나는 다른 세계에서 천 번이나 신들의 제왕이 되었고, 36번 삭가(帝釋天王)의 왕이 되었으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번 크샤트리아 왕 상카팔라(旙芻菠羅)가 되었노라." (T1, p645c)

증거: 《중아함경》 「구예비경(牛糞譬喩經)」 제61경에서 부처님께서 역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나는 지난 세월에 오랜 세월 동안 공덕을 닦아, 오랜 세월 동안 즐거운 과보를 거두었음을 기억하노라. 비구들아! 어느 과거 생에서 나는 7년 동안 자비(慈)를 닦았는데, 세간의 성쇠가 7번 반복되는 동안 이 세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세간이 멸할 때 나는 광음천(光音天)에 다시 태어났고, 세간이 재성될 때 나는 내려와 빈 범궁(梵宮)에서 태어나 그곳의 대범천왕(大梵天王)이 되었노라. 나는 다른 세계에서 천 번이나 신들의 제왕이 되었고, 36번 삭가(帝釋天王)의 왕이 되었으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번 크샤트리아 왕 상카팔라(旙芻菠羅)가 되었노라." (T1, p496b)


수정 포인트 설명 (참고용, 실제 출력에는 포함되지 않음):

  1. 원문의 중복된 표현("이 세 가지 업의 열매를 통해, 이 세 가지 업의 보답을 통해")을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통합하여 번역의 딱딱함을 해소
  2. 오역 수정:
    • 원문에 없는 "으슥하거나"를 "강제나"로 정정
    • 잘못 번역된 광음천(光音天)을 색계천에서 정정
    • 원문에 없는 법보를 칠보 목록에서 제거하고 순서를 원문에 맞춤
  3. 경전 말투에 맞게 인용문의 어미를 자연스럽게 다듬고, "우주"를 불교 용어인 "세간"으로 통일
  4.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통일하여 가독성을 높이고, "다른 방위" 등 직역에 가까운 표현을 "다른 세계" 등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수정
  5. 모든 참조 번호, 경전 이름, 한자 표기, 산스크리트 용어 표기를 원문과 일치시켜 정보를 보존

[예시 3] 과거세에 부처님은 마하데바(大天)라는 이름의 전륜성왕이셨으니, 법에 따라 바르게 나라를 다스리셨다. 말년에 머리칼과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으셨으며, 깊은 신심을 내어 재가를 버리고 출가하신 뒤 성왕으로서 성스러운 범행을 닦으셨다. 최후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은 처음 다섯 바라밀(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을 실천하며 공덕을 쌓으셨다.

증거: 중아함경 • 마하데바 [木*奈]림경(제67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다여, 오랜 옛날 이 미틸라 [木奈] 숲에 마하데바라는 전륜왕이 있었으니, 지혜롭고 총명하며 사군(四軍)을 갖추고 온 세상을 자재로이 다스리며 뜻하는 대로 하였다. 정의로운 법왕으로서 칠보(七寶)를 얻고 백성의 네 가지 복덕을 누렸다. 아난다여, 마하데바 대왕이 얻은 일곱 보배란 무엇이냐? 수레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보석 보배, 왕비 보배, 가주(家主) 보배, 장군 보배—이것을 일곱이라 하느니라. … 대왕이 여러 소왕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각기 자신의 영토를 법으로써 다스리고 불의로 다스리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나라에 악행과 법에 어긋난 행위가 뿌리내리지 않게 하라." … 마하데바 대왕은 8만 4천 년이라는 지극히 긴 수명을 누렸으니, 어린 시절 8만 4천 년을 보내고, 소왕으로 8만 4천 년을 다스렸으며, 대왕으로 또 8만 4천 년을 다스린 뒤 머리칼과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었으며, 깊은 신심을 내어 재가를 버리고 출가한 뒤 성왕으로서 성스러운 범행을 닦아 이 미틸라의 마하데바 [木奈] 숲에 머물렀다. … 아난다여, 아주 오랜 옛날 그 마하데바 대왕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바로 나 자신임을 알라. (T1, p515a)

[예시 4] 과거 일곱 번째 생애에서 부처님은 마하수다르샤나(大善見)라는 이름의 전륜성왕이셨으니, 법에 따라 바르게 다스리셨다. 말년에 사무량심(四無量心, 범주梵住)을 닦으셨으며, 이 수행과 더불어 처음 다섯 바라밀을 실천하여 그토록 많은 공덕을 쌓으심으로써, 입멸 후 범천계에 태어나셨다. 이후 여러 생애에 걸쳐 부처님은 모두 여섯 번 전륜왕으로 출현하셨고, 일곱 번째 출현에서 성불하셨다. 중아함경장아함경에는 마하수다르샤나 왕의 행적이 동일하게 전해진다.

증거: 중아함경 • 마하수다르샤나왕경(제68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다여, 웅장한 궁전, 연꽃 연못, 야자수림이 모두 완공되자, 8만 4천의 소왕들이 모두 마하수다르사나 왕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웅장한 궁전, 연꽃 연못, 야자수림이 모두 완성되었음을 아십시오. 부디 마음껏 즐겨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난다여, 그때 마하수다르사나 왕은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대전에 제일 먼저 오르지 않겠다. 만약 구시나가라 성에 머물고 있는 존경할 만한 śramaṇa이나 brahmin이 계신다면, 그들을 모두 이리로 모셔 이 대전에 자리 잡게 하고,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과 풍부한 다양한 다과를 대접하여 한 분 한 분 모두 만족하시도록 직접 시중들겠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시면 그릇을 거두고 세수할 물을 대접한 뒤 돌려보내겠다.

이러한 결심을 한 뒤, 마하수다르사나 왕은 즉시 구시나가라 성에 머물고 있는 모든 존경할 만한 śramaṇabrahmin을 대전에 모셨습니다. 그들이 모두 모여 자리에 앉자, 왕이 직접 세수할 물을 대접한 뒤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과 풍부한 다양한 다과를 대접하여 한 분 한 분 모두 만족하시도록 직접 시중들었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자 그릇을 거두고 세수할 물을 대접한 뒤, 축원을 받아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아난다여, 마하수다르사나 왕은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대전에서 감각적 향락에 빠지지 않겠다. 오히려 궁전에 올라 시자 한 명만 데리고 함께 머물겠다.

아난다여, 얼마 후 마하수다르사나 왕은 시자 한 명을 데리고 대전에 올라, 금빛 정자에 들어가 은좌에 앉았습니다…… 이어 은빛 정자에 들어가 금좌에 앉았습니다…… 수정 정자에 들어가 보옥좌에 앉았습니다…… 보옥 정자에 들어가 수정좌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양탄자와 부드러운 모피 깔개를 펴고, 비단과 얇은 명주로 장식하였으며, 몸을 덮을 담요와 양쪽 끝에 방석을 두었고, kaliṅga-bhāradvāja-paṭṭa-sāraṇa 요를 깔았습니다.

앉은 뒤, 그는 감각적 욕망과 부정한 무익한 상태들을 버리고, 심(尋)과 사(伺)로 고독에서 생겨난 희열과 즐거움에 들어 첫 번째 jhāna를 완전히 증득하였습니다.

아난다여, 그때 오래도록 왕을 뵙지 못했던 8만 4천 후궁과 여보물들이 모두 그리움에 사무쳐 왕을 뵙고 싶어했습니다……

아난다여, 팔만 4천 후궁과 여보물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하수다르사나 왕이 시자를 데리고 대전으로 돌아와 금빛 정자에 들어가 은좌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양탄자와 부드러운 모피 깔개를 펴고, 비단과 얇은 명주로 장식하였으며, 몸을 덮을 담요와 양쪽 끝에 방석을 두었고, kaliṅga-bhāradvāja-paṭṭa-sāraṇa 요를 깔았습니다.

앉은 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감각적 갈애, 진(瞋), 해로움, 분쟁, 악의, 아첨, 외람(外諂), 사기(詐僞), 허어(虛誑),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부정하고 무익한 마음 상태들의 종착점이구나. 그는 동방 전체를 자비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연민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희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사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 완전히 그 마음을 주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방, 서방, 북방, 중간 방위, 위와 아래까지, 집착도, 원한도, 증오도, 분쟁도 없이 지극히 광대하고 원만하며, 한계 없이 탁월하게 닦은 마음으로 두루 가득 채워 온 세계를 아우르고 마음의 주재에 이르렀습니다.

아난다여, 그가 이생을 떠날 때, 마하수다르사나 왕은 풍성한 식사를 한 가정주나 그의 자녀가 느끼는 것처럼 가벼운 불편함만을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아난다여, 마하수다르사나 왕이 생애 말미에 느낀 그 가벼운 불편함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아난다여, 네 가지 brahmavihāra를 닦고 모든 감각적 갈애와 마음의 작위(造作)를 내려놓은 뒤, 마하수다르사나 왕은 그 삶을 떠나 범천(梵天) 계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아난다야, 그대는 저 먼 옛날의 마하수다르샨 대왕이 다른 사람이었겠느냐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나였음을 알라. … 아난다야, 구시나가라 성과 고티 종족의 살라 숲, 나이란자나 강, 야무나 강, 관두전, 그리고 내가 눕도록 마련된 자리 사이에서 나는 일곱 번 몸을 버렸노라. 그 일곱 생 가운데 여섯 번은 전륜성왕이었으며, 이제 일곱 번째 생에서 나는 여래, 아라한, 정각을 이룬 이니라. (T1, p518b)

이러한 예는 세상에 부처가 나지 않은 시대에는 부처가 재가 장로, 존경받는 스승, 전륜성왕의 역할로 공덕을 쌓고 무량한 자비의 마음을 닦았으며, 부처가 있는 시대에는 재가 신자로서 그 부처를 섬기거나 출가 수행자로서 도를 닦았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가섭불(迦叶佛) 시대에 부처의 전생은 우드라카(童子优多罗)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가섭불 아래에서 출가하여 수행하며 깨달음에 필요한 자량을 쌓았다. 《중아함경·바세타경》(63경)에서 부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때, 난다차바라다자(难提波罗)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섭불 여래, 아라한, 정각을 이룬 이가 청년 우드라카를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허락하셨다. 구족계를 받은 후 그는 바세타 마을에서 며칠간 머물다가, 가사와 발우를 들고 큰 비구 승가와 함께 바라나시[木*奈] 가시국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한동안 유행하다 바라나시[木*奈] 가시국에 도착하여, 바라나시[木*奈]의 사반타르시 도량에 있는 녹야에서 머물렀다. …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때의 청년 우드라카가 다른 사람이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나였음을 알라. (T1, p500c)

이러한 기록들은 보살도의 초기 단계에서 부처가 여러 생에 걸쳐 세 가지 공덕행(혹은 세 가지 선근)을 닦고, 대자비의 싹을 틔우며, 명실상부한 보살이 되어 공덕이 점점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3) 지혜 공덕의 축적은 아직 충분하지 못했다**

부처가 초기 단계에서 닦은 세 가지 공덕행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의 다섯 바라밀을 아우른다. 이처럼 여러 생에 걸쳐 공덕을 쌓았음에도 지혜 공덕의 축적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해, 반야바라밀(지혜의 완성)이 부족했다. 그 결과 그의 가르침은 궁극의 진리에 이르지 못했고, 아직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없었다. 부처가 된 이 생에서야 비로소 궁극의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이를 다음 네 가지 예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예시 1] 부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옛날에 나는 수찬다(随蓝)라는 이름의 큰 바라문 장로였다. 재가자여! 그때 나는 자신과 남을 위한 이익, 여러 사람을 위한 이익, 세상에 대한 자비를 구했으며, 천상과 인간을 위해 바르고 유익하며 평화롭고 행복한 것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때 나의 가르침은 궁극에 이르지 못했고, 완전히 정화되지 못했으며, 청정한 삶을 성취하지 못했으며, 마침내 완전한 끝에 이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여전히 생, 노, 병, 죽음, 울음,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모든 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해방시키지 못했다. (T1, p678a)

[예시 2] 부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존사 알라라(尊師阿蘭那)라 불렸다. 그때 나에게는 수십만 명의 제자가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범천(梵天)의 도를 가르쳤다. … 그때 나와 나의 제자들은 헛되이 수행하지 않고 큰 과(果)를 얻었다. 그때 나는 자신을 위한 이익, 다른 이를 위한 이익, 많은 사람을 위한 이익, 세상에 대한 자비를 구했다. 나는 천과 인간 모두에게 의로움과 이익, 평화와 행복을 구했다. 그러나 그때 나의 가르침은 궁극에 이르지 못했고, 완전히 정화되지 못했으며, 성스러운 삶을 완성하지도 못해 그 완전한 경지에 이르게 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아직 출생·노쇠·병·죽음·울음·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모든 중생을 온갖 괴로움에서 해방시키지도 못했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세상에 여래·응공·정편지·명행족·선세·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인 세존, 곧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부처로 출현했다. 이제 나는 자신을 위한 이익, 다른 이를 위한 이익, 많은 사람을 위한 이익, 세상에 대한 자비를 구한다. 나는 천과 인간 모두에게 의로움과 이익, 평화와 행복을 구한다. 이제 나의 가르침은 궁극에 이르렀고, 완전히 정화되었으며, 성스러운 삶을 완성하여 그 완전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이제 나는 출생·노쇠·병·죽음·울음·슬픔에서 벗어났고, 모든 중생을 온갖 괴로움에서 해방시켰다. (T1, p684a)

[예시 3]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푸스티가르바여! 그때 대전존(大典尊)은 큰 공덕(功德)과 힘을 지녔으나, 제자들에게 궁극의 도를 전하지 못했고, 그들이 성스러운 삶의 정점에 이르지 못하게 했으며, 평화의 경지로 이끌지도 못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법을 수행하면, 육체가 죽은 뒤 범천계에 태어나게 했다. 수행이 얕은 이들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Paranirmitavaśavartin, 곧 다른 이의 변화로 즐거움을 누리는 천신들의 하늘)에, 다음으로 화락천(化樂天, Nirmāṇarati), 도솔천(兜率天, Tuṣita), 야마천(夜摩天, Yāma), 도리천(忉利天, Trāyastriṃśa), 사천왕천(四天王天, Four Heavenly Kings Heaven)에 태어났고, 혹은 쇠제리(刹帝利, kṣatriya), 바라문(婆羅門, brahmin), 거사(居士, householder), 귀척(貴戚, noble) 등으로 태어나 모두가 욕망을 자유롭게 성취할 수 있었다. 푸스티가르바여! 그 대전존의 모든 제자들은 출가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수행의 과(果)를 얻고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 도는 궁극의 도가 아니었기에 성스러운 삶의 정점에 이르지 못했고, 평화의 경지로 이끌 수도 없었다. 그들이 오를 수 있는 도의 가장 높은 경지는 오직 범천계뿐이었다.

이제 내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궁극의 도와 성스러운 삶의 완전한 완성, 그리고 최종적인 평화로 이끌어, 궁극적으로는 열반(涅槃, nirvāṇa)에까지 이르게 한다. 제자들이 내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면, 번뇌(煩惱)를 내려놓고 번뇌 없는 경지에 이르며, 마음의 해방과 지혜로써의 해방을 얻는다. (T1, p34a)

[예시 4]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먼 옛날 마하수다르샨 국왕이 있었노라. 그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그 때 나는 스스로의 이익, 다른 이의 이익, 많은 이의 이익, 그리고 세상 모든 중생에 대한 자비를 구하였노라. 천인(天人) 모두를 위하여 바르고 이로운 가르침, 평화와 행복을 구하였노라. 그러나 그 때 나의 가르침은 궁극의 진리에 이르지 못했고, 완전히 정화되지 못했으며, 성스러운 삶을 성취하지 못했고, 그 완전한 마무리에 이르지 못했노라. 그 때 나는 아직 생로병사, 울음과 슬픔에서 해탈하지 못했고, 모든 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해탈시키지도 못했노라.

아난다여, 지금 나는 세상에 타타가타, 아라한, 정등각, 완전한 행과 지혜를 갖춘 분, 존귀한 분, 세상을 아는 분, 무상의 분, 법의 마부, 천인의 스승, 부처라 불리시며 모든 이의 이익을 베푸시는 분으로 출현하였노라. 지금 나는 스스로의 이익, 다른 이의 이익, 많은 이의 이익, 그리고 세상 모든 중생에 대한 자비를 구하노라. 천인(天人) 모두를 위하여 바르고 이로운 가르침, 평화와 행복을 구하노라. 지금 나의 가르침은 궁극의 진리에 이르렀고, 완전히 정화되었으며, 성스러운 삶을 성취하고 그 완전한 마무리에 이르렀노라. 지금 나는 생로병사, 울음과 슬픔에서 해탈하였고, 모든 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해탈시켰노라. (T1, p518b)

이러한 예들은 두 가지 핵심 사항을 보여준다. 첫째, 보살도의 초기 단계에서 부처는 여러 생에 걸쳐 세 가지 공덕 행을 능동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이로써 보살도에 처음 다섯 가지 바라밀이 필수적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둘째, 여러 구절에서 반복되는 진술—「그 때 나의 가르침은 궁극의 진리에 이르지 못했고, 완전히 정화되지 못했으며, 성스러운 삶을 성취하지 못했고 그 완전한 마무리에 이르지 못했노라. 그 때 나는 아직 생로병사, 울음과 슬픔에서 해탈하지 못했고, 모든 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해탈시키지도 못했노라」—는 세 가지 공덕 행, 즉 처음 다섯 가지 바라밀만으로는 중생을 진정으로 이롭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음을 명확히 한다. 보살도의 후기 단계에서 반야바라밀을 비로소 완성할 때에야 궁극적으로 모든 중생을 해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여러 아함(Āgama) 사례들을 통틀어 보면, 부처는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완성하고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궁극적 목표를 완수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보살도의 후기 단계에서 반야바라밀의 완성이 요구되는 까닭이며, 바로 이러한 연역의 흐름 속에서 부처의 입멸(parinirvāṇa) 5백 년 후에 방대한 반야경(Prajñā Sūtras)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3. 아함경에 나타난 보살도의 반야 완성

보살도의 초기 단계에서 부처는 여러 생에 걸쳐 보시(布施)·계율(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의 다섯 바라밀을 닦아 나가셨다. 이러한 장기간의 공덕 축적을 통해 대자비의 싹을 틔우셨고, 이름과 실체 모두에 부합하는 진정한 보살이 되셨으며, 공덕의 축적은 점차 성숙해 갔다. 아함경의 자료를 근거로 보면, 지혜의 공덕을 성숙시키기 위해 부처는 보살도의 후기 단계에 이르러 능동적으로 「공삼매(空三昧)」를 실천하셨고, 일관되게 공(空)의 행위를 수행하심으로써 반야바라밀을 완성하셨다. 이는 다음 세 가지 사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사례 1] 《증일아함경》(Ekottara Āgama 제406경)에서 부처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사리불이여! 그대가 공 삼매에 머물 수 있음은, 모든 삼매 가운데 공 삼매가 가장 으뜸이기 때문이니! 공 삼매에 머무는 비구는 나도 보지 않고, 사람도 보지 않으며, 수명도 보지 않고, 일체 유정도 보지 않는다. 또한 일체 제행의 생과 멸도 보지 않는다. 보지 않기 때문에 업의 근본을 짓지 않으며, 업이 없으므로 더 이상 생을 받지 않고, 생이 다하므로 고락의 과보를 더 이상 겪지 않는다. 사리불이여, 알지니! 내가 아직 부처가 되지 못했을 때, 보리수 아래에 앉아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유정들이 무슨 법을 얻지 못하여 윤회 가운데 떠돌며 해탈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 이 모든 유정들이 세 가지 삼매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윤회 가운데 떠도는 것이다. 일체 법을 관한 뒤에야 나는 공 삼매를 깨달았으며, 공 삼매를 깨달은 뒤에야 무상정등(無上正등)·정편각(正遍覺)·최상수승(最上殊勝)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 공 삼매를 의지하여 보리수를 바라보며 칠일 칠야 동안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사리불이여! 이것으로 알지니, 모든 삼매 가운데 공 삼매가 가장 으뜸이요, 일체 삼매의 왕이 공 삼매임을! (T2, p773c)

[예시 2] 중아함(中阿含)·소공경(小空經) (제190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 존자 아난이 오후 정좌(靜坐)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 발 아래에 머리 조아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뒤 이렇게 말씀하였다. "세존이시여(世尊), 옛날 그대가 삭개(釋迦) 씨족 가운데 사까다(Saketa) 성에서 유행(遊行)하시던 어느 때에, 제가 그대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난이여, 나는 늘 공(空)에 머문다(常在空住).』 제가 그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받들어(受持) 지키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내가 그때 한 말을 그대가 과연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받들어 지키고 있도다. 왜 그런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늘 공에 머물러왔다. … (a) 아난이여, 과거의 모든 타타가타(如來)·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께서 이 참되고(眞實) 비어 있으며 전도되지 않는(不顚倒) 상태—곧 번뇌(煩惱)의 소멸(盡), 번뇌가 없는 것(無煩惱), 무위(無爲), 그리고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행하셨다. (b) 아난이여, 미래의 모든 타타가타·아라한·정등각께서도 또한 이 참되고 비어 있으며 전도되지 않는 상태—곧 번뇌의 소멸, 번뇌가 없는 것, 무위, 그리고 마음의 해탈을 행하실 것이다. (c) 아난이여, 현재의 타타가타·아라한·정등각인 나 역시 이 참되고 비어 있으며 전도되지 않는 상태—곧 번뇌의 소멸, 번뇌가 없는 것, 무위, 그리고 마음의 해탈을 행한다." (T1, p737c)

【예시 3】 *마드야마 아가마(Madhyama Āgama, 中阿含經)*의 「대공경(大空經)」(제191번)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비구가 공에 오래 머물고자 한다면 안쪽 마음을 안정시키고 한 점으로 모아 일심이 되게 해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고 한 점에 모아지면 내적 공을 관해야 한다. … 각각의 삼매에서 마음을 거듭 이끌고, 거듭 닦으며, 거듭 부드럽게 하니, 마음이 유연하고 민첩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워지며, 집중되고 기쁘고 집착에서 벗어난다. 이때 (1a) 내적 공을 성취하여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머물면 마음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가까움을 향해 기울어지며, 명료하고 안정된 주에 이르고, 내적 공 가운데서 해탈한다. (1b) 아난다여, 비구가 이와 같이 관하여—내적 공을 성취하여 머무는 것, 곧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가까움을 향해 기울어지며 명료하고 안정된 주에 이르고 내적 공 가운데서 해탈하는 것—을 정지(正知)라 알면, 이를 정지라 한다. (2a) 아난다여, 비구는 외적 공을 성취하여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머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가까움을 향해 기울어지며, 명료하고 안정된 주에 이르고, 외적 공 가운데서 해탈한다. (2b) 아난다여, 비구가 이와 같이 관하여—외적 공을 성취하여 머무는 것, 곧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가까움을 향해 기울어지며 명료하고 안정된 주에 이르고 외적 공 가운데서 해탈하는 것—을 정지라 알면, 이를 정지라 한다. (3a) 아난다여, 비구는 내외공을 성취하여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머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가까움을 향해 기울어지며, 명료하고 안정된 주에 이르고, 내외공 가운데서 해탈한다. (3b) 아난다여, 비구가 이와 같이 관하여—내외공을 성취하여 머무는 것, 곧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가까움을 향해 기울어지며 명료하고 안정된 주에 이르고 내외공 가운데서 해탈하는 것—을 정지라 알면, 이를 정지라 한다." (T1, p738c)

아가마의 이 세 구절에서 부처님은 자신이 한때 공의 삼매를 닦고 "공의 삼매를 얻어, 그로써 비할 데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였다"고 밝히시며,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공에 오래 머무신다"고 말씀하시고, (1) 내적 공, (2) 외적 공, (3) 내외공을 어떻게 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신다. 그 모든 요지는 반야바라밀의 수행이다.

IV. 인도에서의 반야경 출현

부처님의 열반(涅槃) 후 226년, 아쇼카왕(Aśoka)이 인도에서 덕으로 다스리시기 시작하셨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기둥에 새겨진 법령에는 오직 아가마(阿含)만이 거론되어 있을 뿐, 반야파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 곧 반야경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그 밖의 대승 경전 역시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무렵 스리랑카에 전해진 교법 또한 오직 다섯 아가마만을 다루고 있었을 뿐이다.

부처님의 열반 후 약 4백에서 5백 년이 흐르면서, 인도 내에서도 보살이 부처가 되는 이 길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아가마에 담긴 견해를 바탕으로 수행자들은 첫 다섯 가지 바라밀(파라밀타, pāramit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보살의 길에서 반야 바라밀의 특별한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수많은 반야경이 생겨났다.

예컨대 『대반야경(大般若波羅蜜多經)』 제557권(제5분)에는 이런 내용이 전한다.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 천주(天主) 사크라(Śakra)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네 말대로 모든 부처님들이 증득하신 일체종지(一切種智)는 모두 반야파라밀다를 의지하여 성취되는 것이니라.」 이에 아난(Ānanda)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까닭으로 여래는 보시(布施), 계율(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을 찬양하지 않으시고 반야파라밀다만 특별히 찬양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반야파라밀다가 앞선 다섯 바라밀의 우두머리이자 이끌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이를 찬양하는 것이니라. 더구나 아난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보시부터 반야에 이르기까지 바라밀을 닦으면서도 일체종지에 회향하지 않는다면, 이를 참으로 보시에서 반야에 이르는 바라밀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네 생각은 어떠하냐? 반야파라밀다를 떠나서는 어찌 진정으로 일체종지에 회향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까닭에 반야파라밀다가 앞선 다섯 바라밀의 우두머리이자 이끌이가 될 수 있으므로 내가 특별히 이를 찬양하는 것이니라.」 (T7, p875c)

이 구절에서 반야경은 자체의 목표가 불과(佛果)를 성취하는 것, 즉 일체종지를 얻는 데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앞선 다섯 바라밀의 이끌이로서 반야 바라밀의 역할을 확립하며, 보살의 길에서 '깊은 견해(深見)'의 핵심적 위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 경전은 나아가 아가마에 제시된 (1) 내공(內空), (2) 외공(外空), (3) 내외공(內外空)의 세 가지 공 체계를 열여덟 가지, 때로는 스무 가지의 공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대반야경』 제408권(제2분)에도 이런 기록이 전한다.

그때 존자 사리불(Śāriputra)가 존자 수보리(Subhūti)에게 물었다. 「보살마살(菩薩摩訶薩)이 어떻게 정성(正性)에 들어 이생(離生)하여 해탈(解脫)을 얻을 수 있나이까?」 수보리가 답하였다. 「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 내공(內空)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내공에 의지하여 외공(外空)을 관하지 아니하며, 외공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외공에 의지하여 내외공(內外空)을 관하지 아니고, 외공에 의지하여 공공(空空)을 관하지 아니며, 내외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내외공에 의지하여 외공을 관하지 아니고, 내외공에 의지하여 공공을 관하지 아니며, 공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공공에 의지하여 내외공을 관하지 아니고, 공공에 의지하여 대공(大空)을 관하지 아니며, 대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대공에 의지하여 공공을 관하지 아니고, 대공에 의지하여 유위공(有爲空)을 관하지 아니며, 유위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유위공에 의지하여 대공을 관하지 아니고, 유위공에 의지하여 무위공(無爲空)을 관하지 아니며, 무위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무위공에 의지하여 유위공을 관하지 아니고, 무위공에 의지하여 극한공(極空)을 관하지 아니며, 극한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극한공에 의지하여 무위공을 관하지 아니고, 극한공에 의지하여 무변공(無邊空)을 관하지 아니며, 무변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무변공에 의지하여 극한공을 관하지 아니고, 무변공에 의지하여 비산비집공(非散非集空)을 관하지 아니며, 비산비집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비산비집공에 의지하여 무변공을 관하지 아니고, 비산비집공에 의지하여 본성공(本性空)을 관하지 아니며, 본성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본성공에 의지하여 비산비집공을 관하지 아니고, 본성공에 의지하여 자공공(自相空)을 관하지 아니며, 자공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자공공에 의지하여 본성공을 관하지 아니고, 자공공에 의지하여 일체법공(一切法空)을 관하지 아니며, 일체법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일체법공에 의지하여 자공공을 관하지 아니고, 일체법공에 의지하여 불득공(不得空)을 관하지 아니며, 불득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불득공에 의지하여 일체법공을 관하지 아니고, 불득공에 의지하여 무성공(無性空)을 관하지 아니며, 무성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무성공에 의지하여 불득공을 관하지 아니고, 무성공에 의지하여 자상공(自相空)을 관하지 아니며, 자상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자상공에 의지하여 무성공을 관하지 아니고, 자상공에 의지하여 자상자상공(自相自相空)을 관하지 아니며, 자상자상공을 분별하지 아니고, 자상자상공에 의지하여

"무성자성(無性自性)의 공(空)을 관(觀)하고, 자성(自性)의 공(空)을 관(觀)한다. 사리불아, 보살마살사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며 이렇게 관찰할 때, 이를 보살정에 들어 재생을 해탈한다고 하나니." (T7, p44b)

이는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이 보살정에 들어 재생을 해탈함으로써 열여덟 가지 공을 곧장 직증함을 보여준다. 곧 (1) 내공(內空), (2) 외공(外空), (3) 내외공(內外空), (4) 공공(空空), (5) 대공(大空), (6) 승의공(勝義空), (7) 유위공(有爲空), (8) 무위공(無爲空), (9) 무진공(無盡空), (10) 무변공(無邊空), (11) 무산무란공(無散無亂空), (12) 자성공(自性空), (13) 자공상공(自共相空), (14) 일체법공(一切法空), (15) 불가득공(不可得空), (16) 무성공(無性空), (17) 유성공(有性空), (18)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이 바로 그것이다. 반야바라밀다경이 공의 의미를 얼마나 철저하고 깊이 있게 드러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반야바라밀다경은 인도의 어디에서 처음 전파되었는가? 아소카 시대(석존 입멸 후 약 218~255년)의 기둥 칙령에는 오직 아함 계통의 경전들만 언급되어 있을 뿐, 반야바라밀다를 비롯한 다른 대승경전의 흔적은 단 한 편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반야바라밀다경의 자체 기록에 따르면, 이 경전은 처음 인도 남부에서 흥성한 뒤 북부, 그리고 북동부로 퍼졌다. 예를 들어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560권(제5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 사리불아,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이 깊고 오묘한 반야바라밀다경이 남방으로 흘러 점차 흥성할 것이며, 이어 남방에서 북방으로 흘러 역시 점차 흥성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얻으신 법과 율, 곧 최상의 법에는 쇠퇴나 소멸의 흔적이 조금도 없나니 — 여래께서 얻으신 최상의 법과 율이 바로 이 깊고 오묘한 반야바라밀다경이니라. 보살의 차(車)에 머물러 이 경전을 베끼고, 받들어 모시며, 읽고, 외우고, 수행하고, 관(觀)하며, 설하고, 공경하고, 공양하는 모든 선남자와 그 밖의 이들을, 모든 여래·아뇩다라삼막삼보라리께서 항상 부처의 안목으로 살펴보시어 보호하시고, 칭찬과 권장을 아끼지 않으시며, 그들이 슬픔과 괴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깊고 오묘한 반야바라밀다경이 후세에, 후시에 북동방으로 널리 전파되게 되겠사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사리불아, 후세와 후시에 보살의 차(車)에 머무는 선남자와 그 밖의 이들이 북동방에서 ……" (T7, p890a)

V. 결론: 인도에서의 초기와 후기 보살도의 발전

부처의 열반 해에 편찬된 아함경에 나타나는 보살도는 두 단계로 전개된다. 첫 단계는 세 공덕근의 '광범한 수행', 혹은 보시·청정계·인욕·정진·선정이라는 다섯 바라밀을 중심으로 한다. 이를 통해 공덕을 쌓고 대자비를 기르며 부처가 될 인연을 심는다. 이 다섯 바라밀은 보살도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처가 되기에 부족하다.

두 번째 단계는 반야바라밀의 '심원한 견해'를 중심으로 한다. 지혜의 누적을 결집하여 공덕과 지혜가 모두 원만하게 갖추어질 때 비로소 부처의 경지가 성취된다. 부처의 열반으로부터 약 500년 후, 반야가 드러내는 공(空)의 뜻과 보살이 '공에 많이 머무는' 수행에 부응하여, 반야바라밀경이 남인도에서부터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용수의 시대(150–250년)에 이르러 반야의 '심원한 견해'는 인도 전역에 널리 퍼져, 외도의 견해를 반박하고 공을 탁월하게 설파하였다.

무착(310–390년)이 등장하여 보살지를 펼쳤을 때, 그 경전은 다시 보살도의 '광범한 수행'으로 돌아섰다. 공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첫 다섯 바라밀 가운데 특히 보시와 보살계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 실천을 내세웠다. 인도 불교 후기(750–1200년)에는 반야바라밀경을 주석한 아비사마야랑카라가 같은 흐름을 따랐는데, 보살도의 광범한 수행과 직접 깨달음의 단계를 상세히 다루어 한때 널리 영향력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