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의 좌대
포광선사가 설법을 하시거나 법담을 나누시거나, 제자들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면담을 하실 때면 늘 법당의 좌대에 앉으셨다. 절 안의 모든 이에게 이 좌대는 법을 상징하는 표상이자 깨달음의 징표였기에, 법좌라고도 불렀다.
포광선사가 설법을 하시거나 법담을 나누시거나, 제자들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면담을 하실 때면 늘 법당의 좌대에 앉으셨다. 절 안의 모든 이에게 이 좌대는 법을 상징하는 표상이자 깨달음의 징표였기에, 법좌라고도 불렀다.
어느 날 포광선사가 남쪽에서 법을 펼쳐 달라는 초청을 받아 며칠간 절을 비우게 되었다. 시봉하는 제자는 여느 때처럼 일과를 따라 법당을 쓸었다. 선사의 좌대는 특히 정성 들여 닦아 먼지 한 점 남기지 않았다.
어느 날 점심 후 행선을 마치고 돌아온 시봉 제자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빈객주임이 포광선사의 좌대에 앉아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빈객주임인지라 감히 탓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저녁이 되자 이번에는 독경주임이 태연히 좌대에 앉아 눈을 감고 참선에 들었다. 이를 본 시봉 제자는 더욱 편치 않았다. 저건 선사의 좌대인데! 어찌 이다지도 예의 없이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뒤 며칠 동안 승복발우주임, 전각주임, 향등주임이 차례로 명분을 내세워 법당에서 손님을 맞이했고, 하나같이 자연스럽게 포광선사의 좌대에 앉았다.
어느 날 법당 일과가 끝난 뒤, 시봉 제자가 청소하러 가다가 빈객주임, 전각주임, 향등주임을 비롯한 선임 주임들이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빈객주임은 여전히 포광선사의 좌대에 앉아 있었다. 시봉 제자는 며칠째 참아온 분노를 더는 누를 수 없었다. "주임 여러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하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
빈객주임이 답했다. "법당이오."
"그럼 이 법당은 어디에 쓰는 곳입니까?" 시봉 제자가 다시 물었다.
전각주임이 답했다. "포광선사가 설법을 하시고, 법을 펼치시고, 제자들과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면담을 하시는 곳이오. 그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소?"
시봉 제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이리 편안하게 앉아 잡담을 나누고, 선사의 좌대에 아무런 예의도 없이 앉아 계십니까?"
주임들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선사께서 절에 안 계시잖소!"
시봉 제자가 불쑥 내뱉었다. "선사께서 자리를 비우셨으니, 여러분이 선사를 대신해 주지 노릇을 하시는 셈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먼저 제게 설법도 하시고,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면담도 해 주십시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서 가족은 자기 가족을 지키고, 백성은 나라를 지키며, 신도는 자신의 믿음을 지킨다. 이 공안에서도 시봉 제자가 자기 선사를 지킨 것이다. 하지만 선사를 지키는 일이 어디 시봉 제자만의 몫이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선사'는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리더십의 중심을 가리킨다. 어떤 나라, 어떤 조직이든 리더십의 중심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서 아래로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이 뒤따른다. 선사의 좌대는 부처님 가르침의 권위와 중심이 지닌 가치를 상징한다. 이 시봉 제자는 단순히 자기 선사를 지킨 것이 아니라, 법 그 자체를 지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