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환상·거품·그림자의 공성을 직접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그 공성을 온전히 체현하는 것
불법의 근본 목적이 '일체법이 공(空)하다'는 데 있음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외울 때면 '오온이 공하다'고 읊조리고, 누군가 출가하면 '공문(空門)에 들었다'고 하며, 금강경에서 '모든 유위법은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비유를 들으면 곧바로 가슴이 울린다.
불법의 근본 목적이 '일체법이 공(空)하다'는 데 있음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외울 때면 '오온이 공하다'고 읊조리고, 누군가 출가하면 '공문(空門)에 들었다'고 하며, 금강경에서 '모든 유위법은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비유를 들으면 곧바로 가슴이 울린다.
그러나 '공'의 참뜻은 '아무것도 없다'는 메마르고 텅 빈 상태가 아니다. 공과 유, 온갖 집착을 뛰어넘으면서도 공과 유의 모든 현상을 두루 포용하는 '구경의 공(究竟空)', '제일의제의 공성(第一義諦空性)'이다.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비유는 모든 법이 실체 없는 모습임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며, '공' 자체가 바로 이 모습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지, 그것들과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어떤 궁극의 '공'이 아니다. 모든 법 가운데서 그것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진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모든 법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공'이 품고 있는 '중도진여(中道眞如)'의 생동하는 현현을 참으로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범부는 꿈·환상·거품·그림자 속에서 '공'의 실제 모습을 정확히 가려내기가 어렵다. 늘 현상을 부정하여 얻어낸 '공'으로 자신의 허망한 실체를 증명하려 든다. 그 결과, 동방을 버리고 서방을 취하듯 극락왕생을 구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늘 가르치신 '모든 유위법은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그릇된 견해에 빠지고 만다! 이는 '공'의 뜻을 오해하는 동시에, 정토법문의 곧바르고 담백한 본질 또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법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사실은 정토교리와 모순되지 않을 뿐더러, 내가 신심을 내어 극락왕생을 서원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모든 법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기에 법장비구는 극락정토를 세우겠다는 서원을 세울 수 있었고, 우리의 서원 또한 왕생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법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지 않다면 극락왕생이라는 일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업인과와 윤회의 작용도 이루어질 수 없다. 사바세계가 영원불변이고 중생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어떻게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바꾸고 극락에 왕생할 수 있겠는가? 실상은 이러하다. 사바세계가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고, 극락정토 또한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 사십팔원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고, 신·원·행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 왕생을 원하는 중생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고, 그들을 맞이하는 성중 또한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 바로 모든 법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기에, 우리가 함께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공덕은 모든 법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데서 비롯된다.
문제는, 모든 법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 해도 우리가 허망한 육친(六親)을 놓지 못하고, 허망한 직업과 재물을 내려놓기 아까워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또한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은 극락정토를 한결같이 진지하게 여기고, 일심으로 왕생을 구해야 한다. '독으로 독을 다스리고, 무기로 무기를 막는' 이 묘한 방편을 써서, '거짓을 빌려 참됨을 닦는' 묘한 작용을 실로 이뤄낼 수 있다. 동방과 서방이 뒤섞일 필요는 없건만 묘한 울림이 이루어지고, 범부와 성인이 각기 자기 자리에 머문 채 순식간에 왕생이 이루어진다. 이 모든 성취가 가능한 것 역시 모든 법이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사실에 힘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토법문은 그 작용에서는 일반적인 수행법과 다르지만, 본질에서 불법은 한 맛이다. '꿈·환상·거품·그림자와 같다'는 것의 공성을 직접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그 공성을 온전히 체현하니, '암암리에 통도(通道)와 합하는 법'으로서의 독특한 탁월함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