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Practice · Zen practice

삼보의 유형

삼보의 유형은 역사를 통틀어 매우 다양하게 분류되어 왔으나, 대체로 모두 현상(事)과 본체(理)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선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자.

삼보의 유형은 역사를 통틀어 매우 다양하게 분류되어 왔으나, 대체로 모두 현상(事)과 본체(理)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선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자.

(1) 현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연전삼보(沿傳三寶)와 화변삼보(化變三寶)가 있다. (2) 본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체삼보(一體三寶)와 이성삼보(理性三寶)가 있다.

삼보의 유형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그 뜻부터 짚어보자. 부처는 깨친 이로서,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우치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법은 진리의 원리로서, 깨달음을 위한 이정표가 되어 주고 본성이 상실되지 않도록 지켜 주는 성품이다. 승가는 조화로운 수행 공동체로서, 일상의 모든 일과 진리의 원리에 두루 어울려 살아간다.

연전삼보(沿傳三寶):

옥을 깎아 만들든, 돌을 다듬어 만들든, 금으로 단조하든, 청동으로 주조하든, 흙으로 빚든, 나무를 깎아 만들든, 옻칠을 하든, 먹으로 그리든, 비단이나 종이에 수놓거나 그려진 모든 부처의 형상은 불보이다. 삼장 경전이든 과거와 현재의 대선사들이 남긴 불교 문헌이든,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모든 것은 법보이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비구와 비구니는 승보이다. 부처가 입적하신 후 불교는 오로지 이 형태의 삼보에 의지하여 법의 지혜로운 생명력을 이어가고, 불교의 정신을 보존하며, 가르침을 널리 펴왔다. 그래서 이를 연전삼보라 부른다.

화변삼보(化變三寶):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때부터 입적하실 때까지, 부처님 자신이 곧 불보였다. 그 시기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설하신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등 모든 가르침이 법보를 이뤘다. 부처님을 따라 세속을 버리고 수행한 범부와 성인 제자들이 승보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만 존재했던 모습이기에 화변삼보라 부른다.

일체삼보(一體三寶):

일체삼보란 부처·법·승 각자가 그 안에 삼보의 모든 공덕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부처는 각자의 깨달음을 비추는 광명을 지녔기에 불보이며, 법을 깨닫고 그에 머물러 진리의 원리를 지켜 주는 기능이 있기에 법보이고, 다툼과 갈등이 없기에 승보이다.

법의 본질은 모든 부처를 탄생시킬 수 있는 성품을 지녔기에 불보이고, 스스로 진리의 원리를 지켜 주는 기능이 있기에 법보이며, 모든 법이 평등하여 서로 방해하지 않기에 승보이다.

승가는 관찰의 지혜를 지녔기에 불보이고, 진리의 원리를 지켜 주는 기능이 있기에 법보이며, 화합을 구현하기에 승보이다.

이성삼보(理性三寶):

이성삼보는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삼보를 가리킨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수행과 깨달음의 관점에서 보면, 범부는 모두 무명·업·고에 따라 생사의 윤회를 반복하는 존재이다. 만약 미혹을 깨달음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무명은 반야가 되고 업은 해탈이 되며 고는 법신이 된다. 반야는 불보이고, 해탈은 법보이며, 법신은 승보이다.

본체적 원리(여기, 如如)의 관점에서 보면, 관찰의 주체가 되는 원리가 불보(佛寶)이고, 관찰의 대상이 법보(法寶)이며, 주체와 대상의 비이(二)함이 곧 승보(僧寶)이다.

실제로 삼보는 크게 네 갈래로 분류되지만, 본질적으로는 두 가지 성질로 귀결되며, 어느 쪽도 현상과 본체의 양 측면을 벗어나지 않는다. 현상적 삼보는 구체적인 대상이기에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본체적 삼보는 추상적이라 쉽게 와닿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본성과 여기를 자각(自覺)하지 못한다면, 삼보에 대해 언제나 낯선 서먹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삼보야말로 우리가 귀의(歸依)하는 궁극적인 안식처이자 의지처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윤순 스님의 다음 법어를 옮겨 싣고 참고로 삼고자 한다.

“참된 귀의 대상을 살펴보면, 삼보의 진정한 ‘공덕(功德)’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삼보에 대한 다양한 분류가 있어왔지만, 이 글에서는 그중 두 가지만 간략히 다루고자 한다.

부처님의 무번(無染) 공덕이 곧 불보이다. 성문교(聲聞敎)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법신 — (성엄 스님 주: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解脫知見)을 가리키니, 이를 부처님의 오대 법신이라 한다) — 이 바로 그것이며, 대승에서는 사지(四智)를 갖춘 최고의 보리에 포괄되는 모든 무번 공덕이 이에 해당한다. 참된 법, 즉 열반(涅槃)이 법보이다.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무번 공덕이 곧 승보이다. 성문교에서는 사쌍팔위(四雙八位) — (성엄 스님 주: 소승의 사향(四向)과 사과(四果)를 통칭하여 사쌍팔위라 한다) — 의 무번 공덕이 이에 해당하며, 대승에서는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무번 공덕을 모두 아우르는 보살(菩薩)이 이에 해당한다.

대승의 가르침에 따르면, 청정한 법계의 체(體)·상(相)·용(用)이 완전히 드러난 것이 불보이다. 청정한 법계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이 승보이다. 증감도 없고 이분이나 차별이 없는, 십법계(十法界) 전체에 두루 관통하는 법계가 곧 법보이다. 이를 여기(如如), 실상(實相) 등으로도 부른다. 흔히 말하는 통합(統合) 삼보, 이성(理性) 삼보, 상재(常住) 삼보 등은 모두 이 같은 뜻을 다르게 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이 글을 불학의 기초 지식 없이 읽는다면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범부(凡夫)이니 말이다. 이성 삼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현상적 삼보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자연히 이성 삼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마치 우리가 직접 우주를 항해해 본 적이 없다면, 우주비행사가 우주의 풍경을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 주어도 우리의 이해는 언제나 제한적일 뿐 아니라 때로 왜곡되기 마련이다. 직접 우주를 여행해 보아야만 비로소 그것을 오해 없이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우리 같은 범부에게는 상속삼보(常住三寶)에 귀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상속삼보가 없다면 원리삼보(理體三寶)가 현현할 길이 없고, 원리삼보가 없다면 상속삼보는 뿌리 내릴 터전을 잃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상속삼보는 원리삼보의 큰 작용이고, 원리삼보는 상속삼보의 전체이니. 불교에 대한 믿음은 상속삼보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해야 하며, 그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원리삼보가 실현되는 것, 곧 깨달음을 추구하는 데 있다. 오늘날에는 스스로 원리삼보를 깨닫지도 못하면서, 원리삼보에 대한 믿음만을 내세워 상속삼보를 무시하는 재가 불교도들이 있다. 이는 수레를 말 앞에 끌어놓는 격으로, 높은 경지에 오르려다 오히려 추락하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우리 같은 범부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상삼보뿐이다. 현상삼보 가운데 변화삼보(應化三寶)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만 존재했을 뿐,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는 상속삼보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삼보 가운데 비록 부처님이 가장 공경스럽고 보배로우며, 법이 가장 높고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승가가 가장 무게 있고 근본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불사는 승가가 유지하고, 경전은 승가가 보존하며, 불교 문화는 승가가 전해 나가고, 불제자들은 승가가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러니 부처님 생전에는 불교가 부처님을 중심으로 했으나, 부처님 입멸 후에는 불교가 승가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니 지금 이 시대에 불교 신심을 말한다면, 곧 승가에 귀의해야 하며, 삼보를 공경할 때에도 그 초점을 승가에 두어야 한다. 비록 승려들 가운데 용과 뱀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귀의할 때는 덕 있는 이를 따를 수는 있다. 그러나 공경하고 시바람(수호·공양)하는 마음은 모든 이에게 평등해야 한다. 불경에 따르면, 비록 계율을 어긴 비구라 할지라도 여전히 천인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한다. 그러므로 높고 낮음을 가려 차별해서는 안 되며, 하물며 멋대로 비방해서도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는 첫걸음이자 기초이다. 하지만 그 기초 위에 올라 부처님의 법문에 들어선 후에도, 그 기초를 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이 기초 위에서 조금씩 올라가고 조금씩 넓혀 나가야 한다. 층층이 오르고 넓혀 나가면서, 삼귀의(三歸依)는 이 영적 구조물이 세워지는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하는 방법은 다섯 단계로 나뉜다:

(1) 전환삼귀의(翻邪三歸依) - 부처님의 가르침에 처음 들어설 때. (2) 오계삼귀의(五戒三歸依) - 신심을 낸 후 오계를 추가로 받을 때. (3) 팔계삼귀의(八戒三歸依) - 여섯 재일에 우빠사야 팔계를 지킬 때. (4) 십계삼귀의(十戒三歸依) - 사미와 사미니가 받을 때. (5) 구족계삼귀의(具足戒三歸依) - 비구와 비구니가 대해를 받을 때.

이는 계를 받을 때면 반드시 삼귀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처음 들어설 때에도 반드시 삼귀의를 해야 하며, 오계나 팔계, 십계를 추가로 받을 때에도 계를 받고 그 정수를 체득하기 위해 삼귀의를 행한다. 식차마나계와 비구·비구니계의 경우, 비록 계가 가르마(羯磨) 절차로 수지되지만, 계식 안에서는 반드시 삼귀의를 행한다. 또한 대승 보살계를 받는 이들은 참회와 서원을 맺기 전에 먼저 삼귀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삼귀의 자체가 계는 아니지만, 모든 계의 근본이다. 사실 계의 뜻이 곧 삼귀의 안에 담겨 있다.

삼귀의는 모든 계의 근본일 뿐 아니라, 불제자의 일상 수행의 기초이기도 하다. 사찰의 조향(早香)과 모향(暮香) 의식에는 언제나 삼귀의가 포함되어 있으며, 모든 불사는 삼귀의를 핵심으로 끝맺는다. 그러므로 소승 불교가 전해지는 지역에서는 특히 삼귀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삼귀의 독송(讀誦)을 수행으로 삼을 뿐 아니라, 그 독송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복을 베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