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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불퇴(三種不退): 위(位)·행(行)·염(念)

자, 그럼 이를 살펴보자.

이 사바세계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삼장교(藏敎)에서는 초과(初果)이고, 통교(通敎)에서는 견지(見地)이며, 별교(別敎)에서는 초주(初住)이고, 원교(圓敎)에서는 초신(初信)이다. 이를 위불퇴라 한다. 통교에서는 보살지(菩薩地)이고, 별교에서는 십행(十行)이며, 원교에서는 십신(十信)이다. 이를 행불퇴라 한다. 별교에서는 초지(初地)이고, 원교에서는 초주(初住)이다. 이를 염불퇴라 한다.

자, 그럼 이를 살펴보자.

이는 우리 사바세계의 일반적 교의 체계에 따라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깨달는 과정을 조목별로 보여주는 동시에, 사바세계에서 도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드러내는 설명이다. 여기서 '말한다면'이란 우리 사바세계의 깨달음 단계를 살펴볼 때, 위불퇴가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 묻는 말이다. 삼장교의 초과, 곧 수다원(須陀洹, '흐름에 들어선 자')은 견혹(見惑, 견해의 번뇌)을 끊은 사람을 말한다. 통교의 견지는 그 교의 제4지로, 진리의 이치를 직접 본 이를 가리킨다.

별교(別敎, 특별한 보살 교법)의 초주는 발심주(發心住), 즉 보리심을 최초로 일으킨 단계로, 십주(十住) 가운데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발심주이다. 원교 십신의 초신에 이르는 단계까지를 위불퇴라 한다. 위불퇴란 성자의 길에 들어선 후 다시 범부의 지경으로 물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행불퇴는 대승 보살도에 속하는 개념이다. 삼장교는 대승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아 논외로 둔다.

대승 통교부터 시작해 행불퇴는 통교의 보살 단계에 해당한다.

통교의 보살은 제9보살지에 머물고, 별교에서는 십회향 단계, 원교에서는 십신 단계에 해당한다. 이를 행불퇴라 한다.

행불퇴란 견혹과 사혹(思惑, 생각의 번뇌)을 끊을 뿐 아니라, 진사(塵沙, 수많은 번뇌) 같은 잠재적 번뇌까지 끊으면서 대승 보살도를 닦아 나가다가 물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염불퇴는 무명(無明, 근본적 무지)을 깨뜨려야 얻을 수 있다. 무명을 깨뜨리는 단계는 삼장교에는 존재하지 않고, 통교 역시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별교의 초지, 원교의 초주가 염불퇴에 해당한다.

별교의 환희지(歡喜地)인 초지와 원교의 발심주인 초주—무명을 한 단계 깨뜨리고 법신(法身)을 증득한 이—는 매 순간 일체종지(一切種智, 사찰지나 薩婆若那)의 바다에 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의적 수행의 길에서 보면, 뒤의 두 가지인 행불퇴와 염불퇴를 얻는 것이 얼마나 지극히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극락정토에서는, 오역죄(五逆罪)와 십악(十惡)을 지은 자라도 십념(十念)을 통해 [왕생을] 성취하여, 업장(業障)을 남긴 채 하품하생(下品下生)에 태어나는 자라 할지라도 모두 삼종불퇴를 얻는다.

방금 이 세계에서 삼종불퇴를 얻는 것이 어렵다는 설명은, 무엇보다도 아미타불 염불 법문의 지고한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방금 말한 정토 왕생의 방법에서 '오역죄와 십악'이라는 말은 《관경(觀經)》의 하품하생 장에 근거한 것이다.

오역죄와 십악을 짓고 곧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 처한 이가, 선지식(善知識)이 아미타불 염불 법문과 위신력(威神力)을 설하는 것을 듣고 깊은 부끄러움과 참회를 일으켜 부처님의 명호를 염한다. 열 번 염하거나, 심지어 단 한 번만 염해도 [정토에] 왕생하는 인연을 이룬다. 이것이 업장을 남긴 채 하품하생에 태어난다는 뜻이다.

하품하생에 태어나는 자—지옥에 떨어질 중죄를 짊어진 중생—도 서방 극락정토에 도착하면 마찬가지로 삼종불퇴를 모두 얻어 세 가지를 완전히 증득한다. 만약 위불퇴와 행불퇴만 얻을 수 있다면 그래도 이해가 갈 것이다. 하지만 염불퇴까지 완전히 증득한다니,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염불퇴는 법신 대보살의 경지이다. 즉 법신을 완전히 관하고, 상적광토(常寂光土, 영원한 고요와 빛의 땅)에 완전히 머물며, 근본 무명을 완전히 끊고, 원교의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 깨달음의 37가지 요소)을 완전히 닦아, 일체종지(一切種智, 사찰지나 薩婆若那)를 완전히 증득하는 경지인 것이다.

보라, 이는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곳에서 번뇌가 끊어지는 정도는 지극히 원만하고 돈오(頓悟)적인 초월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역죄와 십악을 지은 자가 삼종불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