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음의 죄악과 정결의 복덕
일반적인 불교 경전과 논서에서는 사음(邪淫)의 다양한 죄악과, 이를 삼가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복덕을 흔히 다룬다. 예를 들어 간음을 들어보자. 한번 빠지면 끊임없는 공포 속에 살게 된다. 상대방 배우자의 보복이 두렵고, 심지어 살해당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한다. 오늘날 남자가 여자를 희롱하다가 발생하는 정실(情殺) 범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 여성에게는 남편이 있고, 그 남편은 이 일을 좌시하지 않으며 결국 가해자를 찾아...
일반적인 불교 경전과 논서에서는 사음(邪淫)의 다양한 죄악과, 이를 삼가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복덕을 흔히 다룬다. 예를 들어 간음을 들어보자. 한번 빠지면 끊임없는 공포 속에 살게 된다. 상대방 배우자의 보복이 두렵고, 심지어 살해당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한다. 오늘날 남자가 여자를 희롱하다가 발생하는 정실(情殺) 범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 여성에게는 남편이 있고, 그 남편은 이 일을 좌시하지 않으며 결국 가해자를 찾아온다. 이런 사례의 대부분이 바로 이런 동기에서 비롯된다. 혼인 밖에 정부를 두면 부부관계는 반드시 깨지고 집안은 불화로 가득 차게 된다.
사실 인간의 로맨틱한 감정에는 본래 배타성을 원하는 속성이 있다. 마음을 여럿에게 흩뿌려 애인을 쫓아다니면 가정생활이 무너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음은 인간의 저급한 본능을 깨우는 반면 도덕적이고 고귀한 면모는 점차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 늪에 빠지면 몸과 마음 모두 상하고 건강은 쇠약해진다. 쫓는 그 쾌락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옛날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궁궐의 궁녀들이 하나같이 무기력하고 안색이 누렇게 뜨고 여위어 있었다. 임금은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먹을 것은 다 먹는데 어찌 저렇게 병색이 역력한가. 어의에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어의가 대답했다. "쉬운 일입니다. 처방 하나 내리면 당장 낫게 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처방이냐?" 임금이 물었다. "잘생긴 남자 열 명입니다." 열 명의 청년을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들어오자 궁녀들은 금방 밝은 낯빛을 되찾았다. 떠들고 웃고 밥을 곧잘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안색은 붉게 윤이 나고 몸도 살이 올라 건강해졌다. 그런데 그 뒤에는 뼈와 가죽만 남은, 사람 꼴이라고 하기 힘든 남자 열 명이 서 있었다. 임금이 "저것들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어의가 대답했다. "약의 찌꺼기입니다." 보라. 이른바 '쾌락'을 제공하는 자들이 대개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망가뜨린다는 것을.
그러므로 인광(印光) 대사께서는 사람이 천명을 다하는 경우가 참으로 드물다고 하셨다. 요절이 만연하여 사음으로 직접 죽는 사람이 40%, 간접적으로 사음으로 죽는 사람이 또 40%에 이르고, 천명을 다하는 사람은 고작 20%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요절은 사음과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빠져 건강을 파괴하는 데서 온다. 갑작스러운 폭력적 죽음 역시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사음은 돈을 요구한다. 끊임없이 지출해야 해서 재산은 밤낮으로 빠져나간다.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몰래 행동하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의심하게 된다. 집안에서의 체면은 땅에 떨어진다. 생각해 보라. 자녀가 그런 행태를 보면 부모를 업신여기게 된다. 훈계하려 들면 "누가 말해요, 당신은요?" 하고 받아치는데 할 말이 없다. 친척과 친구들도 멀리한다. 이런 행위는 온갖 업장(業障)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러서는 지옥에 떨어진다. 지옥에서 벗어난 뒤에는 창녀로 태어나거나, 한 남편을 여러 여자와 공유해야 하는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남자로 태어나면 자기 아내와 딸이 정결하지 못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사음의 업보로서 현생과 내생에 익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색은 모든 악 가운데 으뜸이다"라고 한 것은, 온갖 잘못된 행위 가운데 사음을 가장 첫째로 꼽은 것이다.
사음을 삼가면 공덕이 자라난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보복이나 법적 처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죽은 뒤에는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된다. 정결한 삶, 사음계(邪淫戒)를 온전히 지키는 삶 자체가 극락 왕생의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이 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만약 이 탐욕에 끌린다면, 셋째 악(惡)과 셋째 고통(痛)과 셋째 불(燒)에 대한 경문을 우리 모두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구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자주 뒤바뀌어버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사음에 빠지면 그 뒤에 따르는 격렬한 고통이 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이런 행위가 지나치게 흔해져서, 심지어 '현대적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까지 한다. 이런 생활 방식이 낭만적이고 심지어 매력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애인이 없는 남자는 성공한 인간이 못 된다는 식으로 말해진다. 가치관이 전도된 것이 극에 달한 것이다. 불교 수행자로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 이런 세속적 관념에 휩쓸려 다니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