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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석 범기 대사와 서재(西齋)의 정토시

우리 정토 종사의 역사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할 한 분의 조사가 계십니다. 비록 정토 조사 공식 목록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지만, 정토 수행과 깊은 인연이 닿았던 분이시니 명나라 초석 범기 대사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선 수행에 정진하셔서 원수 노장에게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뒤이어 선원을 열고 제자를 받아들여 선 가르침을 널리 펴셨습니다.

우리 정토 종사의 역사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할 한 분의 조사가 계십니다. 비록 정토 조사 공식 목록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지 않지만, 정토 수행과 깊은 인연이 닿았던 분이시니 명나라 초석 범기 대사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선 수행에 정진하셔서 원수 노장에게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뒤이어 선원을 열고 제자를 받아들여 선 가르침을 널리 펴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릴 적부터 수행의 인연이 깊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이미 염불 수행에 마음이 끌려, 일찍부터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출가 후에도 선 수행을 계속하시면서 매일 십념 염불을 지키셨습니다. 여러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신 뒤 행정 직무에서 물러나신 후에는, 오직 염불만을 위해 지어진 수행처인 서재(西齋)를 짓셨습니다. 서재 안에는 소박한 요를 깔고 결가부좌로 앉아, 묵묵히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셨습니다.

그는 어떻게 염불을 수행하셨을까요? 염불삼매를 깨우치셨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묵묵히 관조하시어 과거·현재·미래 삼세가 고요해지게 하시고, 이어 상하 사방의 온갖 공간, 곧 십방 전체가 고요해지게 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공으로 가라앉으면, 한 송이 연꽃이 피어오르고 그 위에 아미타불이 앉아 계셨습니다. 아미타불께서는 눈부시게 찬란한 빛을 내어주셨고, 그 빛 안에는 누각과 화려한 난간을 비롯한 갖가지 건축물이 있었으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시립해 계셨고, 서방정토의 성중들이 그를 두루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가 수행을 위해 단좌할 때마다 이런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가 목격한 것은 가장 장엄한 부처님의 보신이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지혜가 솟는 샘처럼 끊임없이 솟아났습니다. 그가 지은 시는 모두 합쳐 이삼천 편에 이르렀습니다. 이것들은 보통 사람의 제6의식으로 힘들게 지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의 본성에서 저절로 솟아난 것들이었습니다. 비록 정토십과에 그의 작품 중 극히 일부만 실려 있을 뿐이었지만, 그 적은 분량의 발췌만으로도 오의 대사에게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오의 대사는 그를 이렇게 칭송하셨습니다. “위대한 인도자인 초석 대사에게 예를 올린다. 그분은 다름이 아니라, 곧 아미타불의 원각이시다.” 오의 대사는 모든 수행자들이 『서재정토시』를 읽기를 권하시며, 한두 번 읽으면 세속 생각을 물리칠 수 있고, 세네 번 읽으면 지혜가 열리며, 백 번, 천 번, 만 번, 심지어 억 번을 읽으면 그 자체가 연꽃 위에 앉은 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들이 보여주듯, 『서재정토시』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시로, 풍부한 이미지와 고요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아미타불을 대면한 경험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한 편을 소개합니다.

그의 정토시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

무량수(無量壽)의 자비로운 얼굴을 보려면 지금 그대를 품은 마음을 바로 들여다보라. 단좌(單坐)하여 생사(生死) 왕래(往來)의 길을 끊어내고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을 두루 감싸리라. 정수리(頂髻)에서 천 줄기 빛이 쏟아져 나오니 비단으로 엮은 연화좌(蓮華座)에 앉아 계시도다. 돌아보는 곳마다 보배로운 누각이 솟아 있고 진주 빛이 밝게 빛나고 옥빛이 차갑고 맑도다.

이 시는 그가 어떻게 아미타불을 대면할 수 있었는지를 정확히 담고 있습니다. 첫째,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얼굴을 관찰할 때 밖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지니고 있는 마음속, 곧 자신의 사유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는 『관무량수경』이 가르치는 내용, 즉 아미타불의 삼신(법신·보신·화신)이 모든 중생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리가 관찰의 눈길을 밖이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 자체로 돌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좌하여 생사 왕래의 길을 끊어내고” — 이 ‘앉아서 끊음(坐斷)’은 시간의 공허함으로 들어가는 수행입니다. “지·수·화·풍·공을 두루 감싸리라” — 여기서 ‘세’는 시간을, ‘계’는 공간을 뜻합니다. 한 세계를 이루는 방위는 이 다섯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미타불을 대면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멈추어 고요하게 비워야 합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모두 비워야 비로소 부처의 삼십이대상 중 하나인 정수리의 무계상을 목격할 수 있는데, 아미타불의 정수리에서 천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미타불은 연화좌에 앉아 계시고, 그 주변에는 칠보 누각이 우뚝 솟아 있으며, 보석으로 만든 그물과 갖가지 마니주가 매달려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고 구석구석 정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시들은 그의 본성에서 저절로 솟아난 것일 뿐만 아니라, 선정에서 직접 목격한 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미지가 그의 정토시 곳곳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본 광경은 정교하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법의 진실과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초석 범기 대사는 선과 정토를 한 길로 통합하여 수행하셨습니다. 서방정토로 왕생할 때가 임박하자, 스스로 작별시를 지으셨습니다.

진정한 본성, 온전히 밝은, 근본적으로 생도 없고 멸도 없다. 나무 말이 밤에 울고, 해가 서쪽에서 뜨는도다.

“진정한 본성, 온전히 밝은, 근본적으로 생도 없고 멸도 없다” — 이는 부모가 태어나시기 전의 본래 면목에 대한 자각으로, 가장 높고 직접적인 깨달음의 경지, 즉 모든 생멸을 초월한 존재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경지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앞 두 구절이 집착하지 않는 이 자각을 드러내었다면, 뒤 두 구절은 자비로운 행위가 저절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무 말이 밤에 울고, 해가 서쪽에서 뜨는도다.”

시를 지은 뒤, 그는 함께 수행하던 동료 승려인 몽당어공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형님, 저는 이제 떠납니다.”

그의 수행 동료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초석 대사는 답하셨습니다. “서쪽으로 갑니다.” 그 선배가 다시 물었습니다. “서쪽에는 부처가 계시다는데, 동쪽에는 부처가 없소?” 선배는 어쩌면 초석 대사가 서쪽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어찌하여 서쪽에만 매달리는가? 동쪽에는 부처가 계시지 않단 말인가? 통찰과 혼란이 뒤섞인 이 물음에 초석 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 번 날카롭고 울림 있는 호통을 내지르시고 — 입적하셨습니다. 정말 놀라울 만큼 짧고도 멋진 문답이었습니다.

초석 범기 대사는 바로 이 삼매를 체득하셨습니다. 그 삼매 안에서 그는 아미타불을 직접 대면하실 수 있었고, 아미타불을 대면하는 것은 곧 십방의 모든 부처를 대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미타불이 온 법계를 두루 충만케 하는 법신이기 때문입니다. 이 삼매는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삼매 중 하나이자, 곧 모든 삼매의 왕이라 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