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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업의 조건을 가진 중생을 인도함

폭력적이고 악한 중생을 인도할 때에는, 그들의 선근을 살피는 것 외에도 반드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바로 자신과 그 사이의 업(因緣)입니다.

폭력적이고 악한 중생을 인도할 때에는, 그들의 선근을 살피는 것 외에도 반드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바로 자신과 그 사이의 업(因緣)입니다.

칠인과관(七因果觀)을 닦을 때, 우리는 중생에 대한 대자비심을 발하기 위해 먼저 그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무량 겁(劫)을 거슬러 모든 중생이 자신의 어머니였음을 관(觀)하므로, 모두를 구제하고 이끌어야겠다는 마음을 고르게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카파 대사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중생을 실제로 인도하는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이 서원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차례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과 업이 통하는 이를 먼저 이끌고, 둘째, 그런 인연이 없는 이를 이끌며, 셋째, 자신과 악업에 얽힌 이를 이끈다. 따라서 그 폭력적이고 악한 중생이 자신과 업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를 인도할 수 있습니다. 비록 폭력적이고 악한 행실을 한다 해도, 서로 인연이 닿아 있는 사이이기에 자신의 말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악명 높은 수양제(隋煬帝)를 떠올려보십시오. 그런데 이 사람이 한때는 법(法)을 매우 열심히 닦던 수행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즉위하기 전, 그는 진왕(晉王)이었고, 이름은 양광(楊廣)입니다. 진왕 시절에 그는 지의(智顗) 대사에게서 보살계를 받았고, 대사는 그에게 법명 종지(宗智) 를 내려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따르실 분이시니, 종지라는 법명이 참으로 어울립니다. 군주로서 불법을 손에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양광 왕자는 지의 대사께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 등불을 전하시는 분이시니, '지의(智顗)'라 불러 마땅하옵니다." 이렇듯 지의 대사의 호 '지의'는 사실 양광 왕자가 내린 이름이었습니다.

지의 대사의 전기를 읽으면서, 양광 왕자가 대사를 얼마나 공경했는지 기록된 것을 보았습니다. 지의 대사와 가까이 있던 시절, 양광 왕자는 많은 중대한 사안에 대해 대사께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대사께서 편지를 보내오면, 아무리 높은 작위의 왕자라 해도 스승의 편지를 무릎을 꿇고 읽었다 합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의 대사께서 입적하신 뒤에는, 그의 제자가 더는 그 본보기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양광 왕자는 훗날 황제에 올랐고, 역사는 수양제가 아버지 수문제(隋文帝)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흔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잘 다스리지 못하고 사사로운 욕망에만 빠졌으며, 재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만약 지의 대사께서 몇 년만 더 살으셨다면 수나라의 운명도 크게 달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폭력적이고 악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도 그를 이끌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이 있다면, 선근을 이끌어내고 악근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과 그 사이에 업으로 통하는 인연이 있다면, 그는 실제로 자신의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계(戒)의 뜻은 이렇습니다. 중생이 과거에 폭력적이고 악한 행동을 했거나, 지금도 여전히 번뇌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하더라도, 전생부터 자신과 업의 인연이 닿아 있다면 자신이 베푸는 온갖 가르침과 인도 방도가 그에게 이로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자신과 그들 사이에 업의 인연이 없다고 하더라도, 거부하거나 분노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조용히 축원(祝願)하여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그들을 인도하기란 실로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 사이의 인연은 억지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인연도 없으면서 억지로 이끌려고 하면, 두 배의 힘을 들여도 절반의 결과밖에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계의 참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그런 사람과 업의 인연이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에게 선의(善意)를 베풀어야 합니다. 한동안 행동을 보류하는 것 또한 괜찮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들에 대한 혐오나 분노의 마음으로 벌하려 들거나, 그로 인해 삼보(三寶)와 법회를 등지고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이 계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정제대사: 유식 보살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