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거두어 공(空)의 경지에 머무르다
천태종은 모든 법을 두 가지 경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이른바 ‘가(假)’로, 가명·가상·가작용을 말합니다. 이 세계의 모든 일,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겨난 법들—부귀와 빈곤, 건강과 질병—이러한 상태들 모두가 가에 속합니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모두 인연과 조건에 따라 임시로 생겨나는 것들이므로 가법에 해당합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가명·가상·가작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귀는 행복을, 빈곤...
천태종은 모든 법을 두 가지 경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이른바 ‘가(假)’로, 가명·가상·가작용을 말합니다. 이 세계의 모든 일,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겨난 법들—부귀와 빈곤, 건강과 질병—이러한 상태들 모두가 가에 속합니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모두 인연과 조건에 따라 임시로 생겨나는 것들이므로 가법에 해당합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가명·가상·가작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귀는 행복을, 빈곤은 고통을 가져오는데 이 또한 인연과 조건에 따른 결과입니다. 이를 가(假)라고 하며, 모든 법의 차별된 특성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과거 업력에는 선업과 악업이 모두 담겨 있고, 그에 따라 받는 업보도 가지각색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에 속하는 것으로, 모든 법의 차별된 특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공(空)’입니다. 이 공은 모든 법의 평등한 본성입니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본성의 관점에서 보면 부귀의 본성은 궁극적으로 공이며, 빈곤의 본성 또한 궁극적으로 공입니다. 이 공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입니다. 굳이 “인연과 조건으로 생겨난 법이니 공하다”는 고상한 이론까지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상(無常)을 이야기하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요? ‘체공관(體空觀)’으로 공을 다루기보다 ‘석공관(析空觀)’으로 접근하는 편이 좋습니다. *석(析)*은 분석을 뜻합니다.
부자인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부귀의 상태는 변하기 마련입니다. 오늘 번 돈이 한밤중에 사업 실패나 파산으로 한순간에 모두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부귀는 본래 변하기 쉬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통해 모든 법에는 변하지 않는 실체적 자성이 없음을, 다시 말해 모든 법이 생·주·멸·공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유할 때는 돈이 많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 것이지요. 태어나 삶을 살다가 결국 죽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전체 과정이 변동과 변화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영원한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어나 자라고, 자라서 죽습니다. 이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도 다음 생에는 삼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삼악도에서의 업보가 다하면 선업이 성숙되어 천상에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육도윤회의 삶 전체는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를 무상이라고 하며, 따라서 공하며 자성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空)은 모든 법의 공통된 특성입니다. 모든 법의 본성이 공을 근거로 성립되며, 공 가운데서 다양한 인연과 조건에 따라 법이 생겨납니다. 비록 생겨나지만 그 본성은 여전히 공입니다. 따라서 공은 모든 법의 공통된 특성입니다.
천태종 교의에서 초심 보살은 가(假)에서 공(空)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그 가법들의 상태를 분별하려 들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가법들을 쫓아다니던 마음을 거두어 모읍니다. 거두어 모은 마음을 어디에 두는가? 바로 공(空)에 두어 궁극 공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분별 없이 머무르는 것이지요. 갓 수행을 시작한 사람을 보면 수행이 깊어질수록 세속적인 의미에서 분별하는 마음이 잔잔해지고 초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네, 처음에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면 나중에는 공에서 나와 다시 가(假)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명과 가상에 얽매인 마음을 거두어 모으고 공(空)의 경지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가에서 공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분별부터 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결코 안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오랜 습관적 과실은 조건을 쫓아다니는 데 있습니다. 순간순간 가명·가상·가작용을 분별하며 중생을 구하러 달려가게 됩니다. 그 집착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그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는 순서의 문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