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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 감상 — 마음은 이미 먼지가 없는데 어찌 씻으랴? 이 몸은 병들지 않았는데 어찌 의원을 찾으랴?

당(唐)나라 외산(溈山) 지진(至眞) 선사

상수게(上堂偈)

당(唐)나라 외산(溈山) 지진(至眞) 선사

마음은 이미 먼지가 없는데, 어찌 씻으랴?

이 몸은 병들지 않았는데, 어찌 의원을 찾으랴?

부처이되 부처가 아닌 그 자리를 알고자 하거든,

빛을 비추기 전,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는 때이니라.

첫 구절 「마음은 이미 먼지가 없는데, 어찌 씻으랴」는 마음의 본성을 곧바로 가리킵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이르기를, 「묘하구나! 자성(自性)은 본래 청정하구나! 묘하구나! 자성은 나지도 죽지도 않구나! 묘하구나! 자성은 본래 구족하구나!」라 하셨습니다. 중생의 묘각(妙覺)인 이 마음은 절대적이며 두루 비추어, 미진(微塵) 한 점도 없사오니 — 씻음과 씻지 않음의 분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불성(佛性)은 본래 청정하니, 먼지가 어디에 내려앉겠습니까?

「이 몸은 병들지 않았는데, 어찌 의원을 찾으랴」 — 비록 몸을 말하고 있으나 마음으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육근(六根)·육진(六塵)·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로 된 이 몸은 곧 본래 청정한 마음이 두루 깔린 광활한 법계 그 자체입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은 더러움에서 벗어나 병고(病苦)도 없으니 — 어찌 의원을 찾으리까?

「부처이되 부처가 아닌 그 자리를 알고자 하거든 — 빛을 비추기 전,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는 때니라.」 이 마지막 두 구절은 자기를 넘어 가리키는 선(禪) 공안(公案)과 같이 읽힙니다. 무엇이 부처인가? 부모가 낳기 전 너의 본래 얼굴은 무엇인가? 학인이 이 뜻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빛을 비추기 전,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