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감상 — 도를 배우려면 먼저 가난을 배워야 한다
당(唐)나라 용아거둔(龍牙居遁) 조사작
법구(法句)
당(唐)나라 용아거둔(龍牙居遁) 조사작
도를 배우려면 먼저 가난을 배워야 하니, 가난을 배우는 가운데 도가 저절로 가까워진다. 일단 몸소 이루어 가난의 도가 되면, 도를 실천하는 가운데 여전히 가난 그대로 머문다.
"도를 배우려면 먼저 가난을 배워야 한다." 『노자(老子)』에 이르면, "배움에서는 날로 더하고, 도에서는 날로 덜한다. 덜하고 또 덜하여 무위(無爲)에 이른다." 하였다. 수행자는 가난에 만족하고 도(道)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며, 오욕(五欲)과 육진(六塵),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번뇌(煩惱)를 놓아버릴 때에야 비로소 길이 열린다. 입으로는 수행을 말하면서 마음은 명리(名利)와 재물, 영달, 공양(供養)을 쫓아간다 하면, 비록 천만 가지의 불사(佛事)를 행한다 한들 도(道)를 거스르게 될 뿐이다.
'빈(貧)' 한 글자 안에도 무궁한 미묘함이 담겨 있다. 선(禪)에 앉아 고요히 밤낮으로 안으로 빛을 돌리면, 오온(五蘊)이 온전히 비어 있고 한 가닥의 집착도 남지 않음을 본다.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면 텅 비어 자취조차 없다. "놓아버리니 돌아온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네, 전당(殿堂)에 올릴 일물(一物)도 없도다."
'가난을 배운 뒤에야 도가 가까워진다.' 학인(學人)은 반드시 오온(五蘊)의 공한(空)을 홀연히 깨쳐야만 진실로 공명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을 가라앉힌 어른은 가난(貧) 안에서 도(道)의 친밀한 맛을 보았다. '일단 몸소 이루어 가난의 도(道)가 되면, 도(道)를 실천하는 가운데 여전히 가난한 자 그대로이다'—일단 가난의 도(道)를 몸소 이룬 뒤에는 큰 일이 자연히 분명해진다. 그러나 깨달음은 깨치지 아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참다운 소박함에 이르지 못하면 화로의 불이 순수한 청색(靑色)을 태울 수 없다. 큰 지혜와 큰 어리석음은 하나로 벼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