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감상: 날선 칼날도 다시 갈아야 한다
[당] 임제 의현(義玄) 선사
법통의 시
[당] 임제 의현(義玄) 선사
끊임없이 흘러가거늘 — 묻는다면, 무엇이라 하리오? 무변한 진명(眞明)이니 — 다만 가리킬 따름이오. 형상을 넘어 이름을 넘어 — 아무도 그것을 잡지 않네. 날카로운 칼날은 한 번 쓰자마자 곧 갈아야 하리니.
임제 의현 선사(789–867)는 임제종의 개조사이다. 어려서부터 속계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뒤에는 경전과 논서를 통달하고 율장을 깊이 연구하였다. 처음에는 황보 희운(黃檗希運) 선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고, 고안(高安)의 대안 대우(大安大愚) 선사를 방문하여 그 자리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 황보에게 돌아가 인가를 받았다. 이후 방랑 승려로서 전국을 두루 다니며 당대의 원로 대덕들과 경합을 벌였다. 승가에는 이런 속담이 있었다. "임제가 땅을 유유히 누비는 동안, 그 기운이 사방을 삼켰다." 제자들을 지도하는 그의 방편에는 '삼묘삼요(三玄三要)', '사별(四辨)', '사주객(四主客)', '사조용(四照用)' 등이 있었는데, 그의 가르침은 사정하고 관통하며 생기가 넘쳤다. 임제 선사는 선종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융성한 종파를 세워, 중국과 일본의 선(禪) 역사를 이끄는 주요 계통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선사가 입적하신 후, 조정에서 '회조(慧照)대사'의 시호를 내려 추봉하셨다.
'끊임없이 흘러가니 — 묻는다면, 무엇이라 하리오?' 여기서 '끊임없이 흐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생사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흐름이니, 순간순간의 생각의 흐름과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삶의 흐름을 모두 아우른다. 이 끊임없는 흐름에 대해 묻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무변한 진명(眞明)이니 — 다만 가리킬 따름이오.' 진여(眞如)의 참 본성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조건에 맞춰 조응하며, 그 발휘하는 작용은 무변하다. 생각이 끊임없이 흘러간다 해도, 일체 법의 원만한 상섭을 막는 것은 없으니,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진여(眞如)이다.
'형상을 넘어 이름을 넘어 — 아무도 그것을 잡을 수 없네.' 궁극의 경지란 말·문자·관념적 사고의 모든 흔적에서 벗어난 것이니, 어찌 평범한 이의 지각으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으리오? '날카로운 칼날은 한 번 쓰자마자 곧 갈아야 하리니.'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이신 그 일화, 임제의 사호통(四喝) — 모든 조사들의 가르침과 말씀, 그들의 교묘한 방편과 권편(權便)은 오로지 중생을 해탈시키기 위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견고하고 실재한 것으로 집착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것을 실재한 것으로 여기면, 그것은 '무딘 칼날'이 되고 만다 — 망상과 전도, 집착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칼을 휘두른 뒤에는 다시 갈아야 하며, 깨달음의 피안에 다다른 뒤에는 배를 버려야 하듯, 궁극의 진리 세계에서는 일체의 법도 얻을 수 없으나, 만법(萬法) 가운데에서는 자유로이 어떤 법이든 도의 표현으로 취할 수 있다. 만약 조사들의 한 송이 꽃이나 한 번의 일격, 한 잔의 차나 한 조각의 떡에 집착한다면, 헛되이 망상만 키울 뿐 아니라, 생명을 주는 칼이 생명을 앗아가는 칼로 바뀌고 만다 — 그 얼마나 부질없는 비극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