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 출가하다
당나라 시대에 성이 謝(사)인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낚시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느 날 물고기를 잡다가 뜻밖에 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당나라 시대에 성이 謝(사)인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낚시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느 날 물고기를 잡다가 뜻밖에 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謝) 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버지는 생업을 통해 무거운 살생 업을 쌓으셨으니, 필시 삼악도에 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업장을 녹여 드려야겠다." 이에 그는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법명을 시베이(始悲)라 하였다. 오직 아버지의 은혜를 갚겠다는 일념 하나로 출가한 그는 몹시 정진하였고, 엄격한 두타(頭陀) 고행을 닦았다.
당시 그는 설봉존(雪峰存) 선사와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었다. 설봉 선사는 그가 고행을 그토록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보고 그를 "두타 수행자"라 불렀다. 두타란 마하가섭이 행했던 열두 가지 고행을 말한다.
어느 날, 시베이 스님이 발우와 행장을 챙겨 다른 선지식을 찾아가던 중, 날카로운 돌에 발을 베어 피가 흘렀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문득 크게 깨달았다. 이것이 선종에서 말하는 인연이 무르익어 대오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는 부모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본래의 참된 자성(自性)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 깨달음으로부터 무량한 공덕이 솟아났다. 훗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네가 출가한 공덕과 마음의 참된 본성을 깨달은 공덕으로 말미암아 나는 천상에 태어났다. 이 소식을 전하러 일부러 왔노라."
보라, 이것이 출가로써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 힘이다! 어떤 이들은 출가를 불효라 말하지만, 불교에서 가르치는 효가 세속의 효를 얼마나 뛰어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현자와 어리석은 자의 인연경》*은 이렇게 설한다. 백 명의 눈먼 이를 모두 고쳐 시력을 되찾게 해주는 명의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눈을 빼앗기는 형벌을 받은 백 명이 있는데, 한 사람이 나서서 그 백 명을 모두 구하여 눈을 잃지 않게 한다고 하자. 이 두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으리라 짐작하겠지만, 그것은 다른 이를 출가하게 하거나 스스로 출가하는 공덕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이르기를 "하루라도 출가하면 스무 겁 동안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출가자를 존경해야 한다. 출가할 수 있는 이들은 무수한 생과 겁에 걸쳐 선근을 쌓아온 이들이다. 아들의 출가로 부모가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면, 이를 의심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 아들이 출가하면 칠 대 조상이 천상에 오른다"는 옛말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데,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다만 이 공덕은 참된 출가에서만 비롯된다. 몸으로만 출가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또한 출가해야 비로소 그러한 공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