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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 감상: 시비로 나를 판단하지 말라 — 떠도는 삶은 그런 억지됨과 무관하니

[당(唐)] 용산 화상(龍山和尙)

법을 드러낸 게송

[당(唐)] 용산 화상(龍山和尙)

늘 내 집이라 부르는 초가 세 칸이니, 한 줄기 신비한 빛이니 온 법계가 편안하도다. 시비로 나를 판단하러 오지 말라— 이 떠도는 삶의 억지됨은 나에게 닿지 않으리.

"늘 내 집이라 부르는 초가 세 칸이니, 한 줄기 신비한 빛이니 온 법계가 편안하도다." 세 칸 초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라. 이 세 칸 오두막에 머무는 선사는 무시이래(始無始) 쌓여온 습기의 번뇌를 녹이고 중생을 미래의 불과로 이끌어 주시니. "신비한 빛"은 원만한 깨달음의 묘심을 비유한 것이다. 이 "신비한 빛"을 한 번도 깨닫지 못한 세간의 범부들은 온갖 경계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사람이 바쁘고 일이 바쁘다 해도, 모든 법이 본래 편안한데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를 깨달은 사람은 경계에 흔들리지 않으니, 자연히 "온 법계가 편안하도다" ─ 이는 동(動)과 정(靜)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경지이다.

"시비로 나를 판단하러 오지 말라 — 이 떠도는 삶의 억지됨은 나에게 닿지 않으리." 참선 수행자는 이미 시비와 선악을 초월한 지 오래이니, 범부가 어찌 그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속세의 삶은 당연히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동산(洞山) 선사가 용산 화상을 찾아뵌 뒤, 용산 화상은 자신의 암자에 불을 지르고 더 깊고 높은 산 속으로 들어가셨으며, 그 뒤로는 아무도 그를 다시 뵙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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